Day 9. 생각하며 걷다

by 비아루나 Via Luna

평소보다 조금 늦은 일곱 시, 길을 나선다. 밖은 아직 어둡고, 어스름한 어둠에 휩싸인 마을은 마치 마법사가 나올 듯한 분위기다.


마을을 벗어나자 길은 곧장 산으로 이어진다. 붉은 태양이 천천히 머리를 내밀며 어둠을 몰아낸다. 서울에선 일출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자정까지 야근하는 생활이 반복되니 해 뜨는 시간은 늘 잠들어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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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해를 보며,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들도 조금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이 길에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어제와 오늘, 걸으면서 용서에 대해 생각했다. 용서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누군가를 용서했다고 믿었지만, 문득 다시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감옥으로 면회 간 장면이 떠오른다.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겠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교도소를 찾지만, 살인자는 하느님께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 순간 그녀는 무너져 버린다. 용서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자식을 잃은 어미의 절규가 쏟아진다. 그 장면은 서사라기보다 시적이었다.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삶의 모순을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원한은 원한으로 사라지지 않고 자비로써 사라진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자신의 분노와 원한을 놓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서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의 고통보다 자신의 작은 고통을 훨씬 민감하게 느낀다. 인간은 그렇게 자기의 한계에 갇혀서 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나의 불완전함과 취약성을 받아들일 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거둬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산다. 오늘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마음과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가 나를 용서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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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밀밭과 포도밭,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된다. 내리막인 자갈길을 걸을 때는 발목에 가해지는 압력 때문에 걷는 데 집중하게 된다. 걷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잡념이 사라진다. 가끔 순례길을 걷는 것은 명상과 비슷한 것도 같다.


어제 무리한 탓인지 오늘 다리 상태가 좋지 않다. 천천히 가다 보니 점차 뒤처져 인적 없는 길을 혼자 걷게 되었다. 순례객이 없는 길을 걸을 때는 카미노 표식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 보니 다니엘 생각이 났다. 이메일이라도 알아둘 걸 그랬나, 이제 영영 못 보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오늘따라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왼쪽 어깨에 통증이 느껴지는데 허리 벨트를 더 조이기도 힘들다. 오른쪽 허리에 빨갛게 부어오른 것이 알레르기인지 벌레에 물린 자국인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비아나라는 푯말을 지나 걷는데 자전거 순례를 하는 두 명의 남자가 지나가며 부엔 카미노를 외친다. 그들의 힘찬 페달과 달리 내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겁다. 오르막 길 끝에 카페가 보인다. 카페 앞 테이블에 어제 인사한 킴이 보였다. 그녀는 멀리서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킴의 유창한 스페인어 덕분에 약국에서 벌레 물린 자국을 보여주고 약을 샀다. 그녀는 오늘 나바레타까지 갈 예정이라며 씩씩한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아침을 먹으러 카페 앞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순례길의 오래된 도시들의 골목들은 한 대의 차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랗다. 카페 앞 길을 보며 상상을 한다.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이 골목에 스며있을까? 이곳에서 사람들은 태어나고 웃고 울었겠지. 잘 알지도 못하는 이와 가문의 이름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스페인의 뜨거운 여름 태양을 맞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수백 년 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았을 거리에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간단한 점심을 마치고 다시 길을 걷는데 문득 성공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중학교 이후 목표가 주어지면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아온 모범생의 삶, 누군가에게 불평하지 않고 노력으로 하나씩 쌓아온 시간, 그래서 미뤄 둔 것들도 많았다. 그냥 여기서 더 인내하고 더 노력하면 되는 걸까? 하루에 최소한의 수면 시간 외에 온통 일만 하는 삶. 내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이 길에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샤워를 한 후 십 분 만에 옷을 챙겨 입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운이 좋으면 오피스텔 옆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택시를 타서 10분 만에 클라이언트 회사에 도착한다. 점심시간에도 샌드위치를 먹으며 일하기 일쑤이고 새벽 2시, 늦으면 3시까지 일을 하다 콜택시를 불러서 다시 집으로 간다. 집에 가서 씻고 자정쯤 퇴근 한 날은 책을 읽다 잠드는 날들을 수개월째 반복하고 있었다.


원래의 나는 책과 음악,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야근이 늘어나며 주말에 하던 드럼 레슨도 포기하고 새로 등록한 요가 학원은 안 간지 오래였다. 재즈 댄스 클래스도 등록 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어느덧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나 비범한 일상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사회의 성공을 따라왔지만 정작 나에게 성공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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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로뇨 표지판이 나온 지는 한참 되었는데 도시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길가의 블랙베리를 따다 가시에 찔린 손가락이 쓰려온다. 길 오른편에 커다란 문이 있어 들어가 보니 공동묘지다. 유럽은 공동묘지가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심지어 도시 한가운데 있는 경우도 많다. 어떤 묘에는 가족 여러 명의 사진들이 붙어 있다. 이들에게도 한 때 꿈꾸고 소망하고 사랑하고 고통받았던 시간들이 있었겠지? 항상 묘지에 들를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공동묘지를 나와 계속 걸었다.


푸엔테 데 피에드라 다리에 도착하자 순례객들이 하나 둘 보인다. 로그로뇨는 스페인 북부 리오하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와인과 오래된 성당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와 대서양 기후가 교차해서 여름의 낮은 덥지만 밤은 서늘해서 포도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라고 한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시몬은 한참 전에 도착해서 알베르게 오픈을 기다리는 줄에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수도사 복장을 한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내 순례자 여권을 확인하더니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다. 한국 순례객들이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알베르게에서도 많이 묶어간 모양이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하는데 알베르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다니엘이었다. 너무 반가웠지만 태연하게 안부 인사를 했다.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다니엘, 혹시 저녁 약속 없으면 같이 먹을래?”


“아, 오늘 8시에 친구들과 먹기로 했는데 너도 괜찮으면 같이 먹자, 8시에 여기서 볼래?


“그래”


“혹시 모르니까 내 전화번호를 줄게, 너 이메일 주소도 알려줄 수 있어?”


설레는 마음이 들킬까 봐, 나는 일부러 무심한 척하며 이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아픈 발목 때문에 알베르게를 나와서 약국을 찾았다. 약국에서는 파스 대신 발목 지지 스타킹을 처방해 줬다. 며칠 전에 생긴 뾰루지가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미용실을 못 가서 긴 뒷 머리가 신경이 쓰였다. 길에 액세서리 가게는 찾을 수가 없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어린이 옷가게에서 어린이용 머리끈과 똑딱이 핀을 샀다. 무려 6 유료였다. 바가지를 쓴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립글로스도 바르고 꽃단장을 하고 마당에 나갔는데 다니엘이 왠 스페인 아줌마와 들어온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나를 보더니 엄청 반가운 표정이다. 알고 보니 팜플로나에서 폭우를 만났을 때 서로 우비를 씌워주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광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카페 앞에 한 열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니엘의 스페인 친구들이었다. 모두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친절하게 무언가를 설명해 주려는 표정이었다.


tempImageGYdu2Z.heic 축제의 밤


거리에는 키가 2미터는 족히 넘는 거대한 인형들이, 악기 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인형을 '히간테스 이 카베수도스’라고 하는데 산 마테오 축제 기간에 도시 곳곳을 행진한다고 한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인 리오하 지역의 포도 수확을 기념하는 행사라는데 도시가 온통 음악과 흥으로 시끌벅적했다.


처음 들어간 타파스에서 순례길을 걸은 후 처음으로 맥주를 마셨다. 오늘은 이 분위기에 조금 취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아무런 마음의 짐 없이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다니엘과 매일 같이 걷는 남자는 국경 없는 의사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양쪽 귀에 원형 귀걸이를 한 그의 이름은 라울이었다. 며칠 후에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후 2주를 더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다니엘은 휴가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아서 며칠 후면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바에는 축제 인파 때문인지 앉을자리도 없어서 스탠딩 파티 분위기였다. 다니엘과 친구들을 따라서 몇 군데 바에 들러서 타파스를 맛보고 와인을 마셨다. 알베르게 문이 닫히는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바에서 나왔다. 함께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정이 많은 스페인 사람들, 소박하지만 사람들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전해졌다. 기념사진을 찍는데 몇 명의 스페인 여자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우리는 아쉬운 작별의 포옹을 하고 각자의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사진 속 이름 모를 얼굴들로 기억되겠지만 그들과 함께한 이 행복한 저녁은 오래오래 기억날 것 같다. 너무나 빨리 흘러가는 서울의 각박한 일상에서 잊어버렸던 사람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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