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o Domingo de la Calzada로
지난밤 사설 알베르게에 묵은 순례자는 독일 할머니 두 분과 나뿐이었다. 독일 할머니들은 아침 일찍 먼저 출발하셨다. 나의 발목 상태를 보니 다니엘 일행과 페이스를 맞춰 걷기는 어려워서 혼자 걷기로 했다. 사과 한 조각의 가벼운 아침 식사 후 진통제를 먹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길은 아직 어스름하다. 성당 앞 가로등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도시는 잠들어 있고 주변에 순례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빠져나와 숲길로 들어섰다. 길은 평평하고 주변은 나무들이 무성했다. 앞쪽에 보이는 절벽은 오랜 세월 동안 침식된 흔적이 역력하다. 발목 통증 때문에 느리게 걷고 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모를 풀꽃과 거미줄에 걸린 이슬, 누군가의 발자국들, 이 평화로운 적막감이 나쁘지 않다.
멀리 앞서가는 순례객이 보인다. 허름한 배낭에 하이킹 복장이 아닌 수도사가 입을 듯한 옷을 입고 있다. 통트는 새벽에 흙벽이 퇴적 지층처럼 둘러싸고 있는 길을 걷고 있으니 이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이런 시간은 수백 년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나도 있을 것이다. 아마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은 걷는 인간이 아닐까. 앞서가는 순례자와 내가 침묵 속에서 그 풍경 안을 걷고 있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 이 공간을 함께 걷는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길은 밀밭과 포도밭길로 이어졌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 가운데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서 있는 나무와 집들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리를 걷는데 오늘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포도밭길을 지나 아조프라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발목을 잠시 살핀 후 나는 구멍가게에서 사과와 바나나를 샀다. 오늘 걷는 길에는 마을이 드물고, 밀밭과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며칠새 포도가 영글어간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포도를 키우며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지만 나처럼 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것과 또 다른 종류의 기쁨과 슬픔이 있을 것 같다.
허허벌판이 끝나자 공용 휴게소가 나왔다.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옆에는 스페인 아저씨가 열매를 돌멩이로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아저씨가 자꾸 먹어보라며 열매를 건네신다. 열매 씨앗은 아몬드였다. 스페인 아저씨는 60이 가까운데 부인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 중이었다. 부부가 800킬로 길을 걷는 것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시몬은 프랑스 할아버지들이 순례길에서조차 자기 양말을 부인에게 빨게 한다고 투덜거렸다. 부엌 시설이 열악한 알베르게에서도 빵이 입에 안 맞는다는 남편을 위해 밥을 짓던 한국 아줌마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길에는 노부부도 있고, 각자의 친구들과 걷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다.
어젯밤의 왁자지껄한 저녁 시간 때문인지 오늘은 다니엘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흘 후면 그는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다니엘과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 둘 다 모국어가 아닌 제2 외국어로 이야기하지만 서로의 말 이면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어로 무수히 많은 말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표면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보통 자기와 비슷하거나 아주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고 한다. 내가 다니엘에게 끌리는 이유는 아마 그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장 활발히 작동하는 로펌과 컨설팅 회사에 다니면서 마음 한 구석은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선뜻 외면할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아마도 무수히 많겠지. 다니엘이 보여준 회사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을 보고 엄청 웃었다. 슈트를 입고 명석한 변호사처럼 보이는 그와 지금 이 길에서 만나는 그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 서울의 광화문과 여의도의 빌딩들을 오가던 나와 지금 이 길의 나가 달라 보이는 것처럼. 이 길이 끝나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무엇이 변할지는 알 수 없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가이드 북에 써진 것처럼 Ciruena와 Cirunuela가 보인다. 이름도 비슷한 마을들, Ciruena에는 골프장이 들어서고 공사가 한창이다. 나는 시골길인 Ciruniela길을 택해 걸었다. 밀밭이 보이는 방향으로 걷는데 어느새 나는 도로 위를 걷고 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카미노 표식을 놓친 것 같아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600 미터를 되돌아가야 한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다 놓친 표지판을 발견했다. 도로가 아닌 밀밭길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지금까지 길을 크게 잃어본 적이 없어서 운이 좋았다. 조금 더 내가 걷는 길과 표지판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무심코 내린 결정 때문에 길을 잘 못 들어서 한참을 헤매다 되돌아서 제 길을 찾아오는 과정을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자주 겪는 걸까? 인생의 한 시기 가지나고 이 서성거림이 끝나면 오늘 길을 찾았듯이 다시 제 궤도를 찾을 수 있겠지.
추수가 끝난 밀밭 틈을 한참 헤집고 걸어간 후에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산토도밍고데라칼사다 푯말이 보였다. 한참을 걸어서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는 수녀님이 카운터에서 안내를 해 주었다. 중세 도시답게 수도원도 꽤 규모가 컸다.
다니엘 일행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나는 침대 3개가 있는 방에 배정되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순례객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11세기의 은자인 비로리아 도밍고는 순례길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는 이곳 산토도밍고에 순례자를 위한 호스텔과 병원을 만들고 순례객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는 유럽 전역에서 순례길을 걸었다. 자신의 집에서 걸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지금처럼 배낭과 최신 등산화를 신고 걷는 길이 아니었다. 옷가지 하나와 천가방을 하나 둘러메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도움에 의지해 걷는 길이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도심을 걸었다. 도시 전체가 오백 년은 족히 넘은 듯 오래된 건물들로 가득했다. 산토도밍고에는 1100년에 지어진 알베르게가 있는데 지난 천 년 동안 순례자들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길을 걷다가 무료 전시회가 있어서 전시회장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화가 툴르즈 로트렉을 오마쥬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로트렉은 150센티 미터 단신에 신체장애에 대한 콤플렉스와 평생 싸우다 알코올 중독으로 삼십 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일생이 말해주듯 작품에는 우수가 가득하지만, 한 편으로는 작품 속에 소수자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면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 전시회에서는 현대 작가들이 로트렉의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했는데 그림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내가 그림의 일부처럼 투사되게 보이는 작품들이 있었다. 이 작품들 중 프리다 칼로의 말에 가슴이 찡했다.
날개가 있다면 다리가 필요 없지.
교통사고 이후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서 보낸 화가, 아마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평생 장애와 싸웠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는 점에서 로트렉과 프리다 칼로는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시회 장을 나와 근처 성당에서 잠깐 기도를 하고 알베르게를 향해 걸었다. 앞 쪽으로 키가 작고 흰머리를 산발한 노인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움찔해서 옆으로 비켜섰다. 그 노인이 다행히 옆을 지나가자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운데는 옛날 병사 복장을 한 사람이 공연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방금 본 노인도 공연을 하는 배우였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내가 어떤 것을 안다고 할 때 과연 얼마나 아는 것일까? 오늘처럼 누군가의 연극의 일부를 실제처럼 오해한 적은 없을까?
하비에르와 라울도 연극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다니엘이 나를 찾으러 알베르게로 갔다고 한다. 알베르게에서 다니엘이 돌아오자 우리는 연극 구경을 잠시 하다 저녁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카드놀이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에 다니엘과 함께 걷게 되었다.
다니엘이 잠시 멈추더니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해 질 녘 골목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데 가슴이 쿵쾅 거렸다. 누군가와 눈을 응시하며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 도시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역사가 있는 도시잖아. 이 길에 천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살았고 이 길에서 웃고 울고 삶이 녹아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여기에 살았던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
나는 이 도시가 별로야
왜?
여기는 중세도시잖아. 중세 시대에는 종교가 전부였으니 보통 사람들은 고생만 진탕 했을 것 같거든. 그래서 난 중세도시가 싫어
나도 중세는 정말 별로야. 그런데 그건 현대의 관점으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신이든 무엇이든 나름 희망을 찾지 않았을까?
산토도밍고의 밤은 설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불면의 밤이 되었다. 같은 방에 묶던 오스트리아 순례객 두 명의 코골이가 밤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