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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코타키나발루 (2)

혼자가 아니라면 식도락을

by project A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둘이라 가능한


분명 어릴 때는 정말 잘 먹었던 것 같은데, 크면 클수록 식욕이 푹푹 꺾이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서 식사가 한껏 불규칙해지고 굶는 일에 익숙해진 탓일 수도, 관심 없는 일에는 한껏 무관심해지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여행을 가면 식도락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다. 여행을 가서 하는 식사는 무조건 현지식을 우선으로!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가이드북에 소개된 유명한 음식들을 알아두는 정도, 유럽여행처럼 긴 일정이라면 맛집을 찾아보는 수고는 들이지 않는다. 딱 현지 체험, 견문 넓히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둘 이상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 혼자면 몰라도 동행인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현지의 분위기를 즐기며 한껏 담소를 나누는 일이 정말 중요해진다. 여행 계획이 거의 식도락에 초점을 맞추어 세워질 정도다. 혼자가 아니면 먹어보지 못할 음식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고, 혼자 먹어서는 흥이 나지 않는 음식도 너무 많다. 하지만 동행인과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다. 다 먹어보고 말 테야.


힐링여행이라 쓰고 먹방 여행이라 읽었던 코타키나발루 여행 내내 우리의 배는 꺼질 줄을 몰랐다. 원체 덥고 습한 날씨라 바깥을 오랫동안 걸어 다니거나 하는 일은 체력을 훅훅 깎아먹었고,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힐링여행을 목표로 했으니 핑계는 충분했다. 우리는 수시로 휴식을, 이곳의 명물임을 핑계로 식당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온갖 메뉴를 주문했다. 딤섬부터 우리가 홀딱 반한 미고랭, 현지 전통식, 락사, 게와 새우, 심지어는 호텔 레스토랑의 코스 메뉴까지!


그중에서도 제일이었던 건 이펑이라는 현지 식당_가 보았던 어떤 식당보다도 현지인 비율이 높았다_에서 주문했던 락사였다. 코코넛 밀크와 향신료가 들어간 쌀국수라는 모호하고 낯선 설명에 주문하기 전까지 아주 큰 기대는 없었고, 국물을 맛보는 순간까지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현지식은 최대한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맛본 첫 입. 그 순간부터 우리는 락사에 푹 빠졌다. 코코넛 밀크 덕분인지 일반 쌀국수보다는 부드러운 국물에 느끼하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향신료들, 익숙한 쌀국수와 야들야들한 닭고기들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요리였다. 함께 시킨 치킨 클레이팟(돌솥 치킨 덮밥 같은 음식이었다)은 뒷전으로 한 채 더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국물을 들이켜고, 면을 흡입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 몇 대만이 털털털 돌아가는 오래된 식당에서 정신없이 먹었던 락사는 코타키나발루 이야기를 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이거 하나를 먹으려고 코타키나발루를 다시 갈 수 있냐고 물으면 조금 고민은 하겠지만 결국은 가고 말 지도!


P20180626_135908087_AA1F9655-0FC3-4170-A46D-2D7B192EFB33.JPG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계획하는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는 현지 음식, 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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