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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코타키나발루 (1)

떠나요 둘이서

by project A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시작된 둘만의 여행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어이없고 간단했다. 당시 이스타 항공에서 특가 항공권이 열렸었고, 그 사실이 적힌 기사를 우연히 보았기 때문이다! 종강이 간절했던 초여름의 어느 날, 안 그래도 학교생활에 지쳐 휴식을 부르짖던 찰나에 발견한 저렴한 항공권 소식에 고민도 없이 친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들떴는지 같이 갈 사람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혼자 신이 나 난생처음으로 강의실 뒤편에 앉아 수업을 듣는 척하며 여행지 정보를 긁어모으는 딴짓도 감행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여행은 짝수로! 를 모토로 하는 사람답게 한 친구가 동참의사를 밝히자마자 속전속결로 여행지를 결정했고, 며칠 후 친구를 만나 하룻밤 새에_말 그대로 저녁에 시작해 밤을 새우며 계획을 완성했다_투어 예약을 포함해 모든 여행 일정을 짰다.


덥고 힘들면 그냥 카페 가자! 3보 이상 택시! 를 외치며 여유로운 일정의 힐링 여행을 계획한 것과 달리 떠나기 전까지의 일정은 급박하기 짝이 없었다. 종강하자마자 바로 떠나는 여행이라 출발 전날 새벽 4시 반까지 마지막 과제를 마감해야만 했고 친구는 본가가 있는 지방에서 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한참을 이동해야만 했다. 출발도 전에 지칠 법도 한 일정이었지만 둘이서 떠나는 첫 여행이라 그랬는지 둘 다 한껏 흥분한 채 긴 대기시간은 잘 지나 보내고 비행기에 타서야 잠에 들었다.


P20180624_152017880_36FD8E84-F99D-4D5C-B5A3-DC2685B41ACE.JPG 기념품 겸 선물용으로 샀던 미니 드림캐쳐. 둘이 산 것들을 모으니 무지개가 됐다.


함께라서 행복해


사실 친구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 여행을 가기 전에는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의견이 부딪히고 괜히 감정만 상해서 오면 어쩌지. 절대 고집부리지 말아야지. 다행히도 다짐과 걱정이 무색하게도 여행은 즐거웠다. 공금과 사비 문제도 마찰 없이 지나갔고 먹고 싶은 건 다 먹자! 쉬고 싶을 때는 쉬자! 를 목표로 갔던 여행답게 체력이나 식사 문제로 다툴 일도 없었고, 덤 앤 더머 같을 때도 많았지만 함께였기에 웃어넘길 수 있었다. 4박 6일 동안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언제든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그중 기억에 남는 두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1) 롯데리아 70원 사건


우리가 탈 비행기의 도착 시간은 현지 시각으로 밤 11시 35분. 그 시간에 그랩을 부르려면 유심은 필수에 비용도 지불해야 했다. 현지 공항 환전은 바가지라는 말이 많았기에 차라리 환율 우대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은행에서 환전하자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의 화폐 링깃은_당연하지만_아무 은행에서나 환전할 수 없다. 그래서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2만원만 우선 링깃으로 환전하려 했다. 맹점은 단 하나. 링깃은 10단위로밖에 없다는 것! 2만원을 내밀어도 당시 환율로 60링깃에 해당하는 18,070원만 환전이 가능했다. 결국 이도 저도 못하게 1,930원이 우리의 수중에 남아버렸다. 둘이 나누기도 애매한 금액이니 어떻게든 돈을 처리하려 고개를 두리번대던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던 롯데리아였다. 양념감자? 양념감자! 속전속결로 결정을 내리고 가격표를 보러 간 우리들을 반겨준 건 딱 70원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잔돈은 있을 리도 없는터라 연신 억울해...70원...을 아련히 중얼거리다 결국 환전할 돈을 빼면 땡전 한 푼 없던 내 대신 친구가 2,000원을 내고 1,930원을 가져갔다. 70원이 없어서 억울해지는 상황이라니. 공항이라 가능한 웃픈 해프닝이었다.


2) 가끔은 바보 같기도


바다 색이 아름다운 휴양도시 코타키나발루에서 유명한 레저는 역시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이다. 수영이 서투른 우리는 스노클링을 선택했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정말 즐거웠다. 수영도 못 하는 둘이서 물고기는 보겠다고 열심히 첨벙 대고 다니며 살을 한껏 태웠다. 문제는 그 후였다. 바로 숙소로 데려다주는 투어였고 바로 숙소의 루프탑 수영장으로 직행할 계획이라 간단히 물로 헹구기만 하고 짧은 수건을 두른 뒤 탄 버스는 빵빵한 에어컨을 자랑했다. 게다가 하필 퇴근시간의 교통체증에 걸려 오랜 시간 둘이서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씻고 옷도 갈아입었지! 아니면 두툼한 비치타월이라도 준비했지!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버스는 떠난 지 오래. 차가운 몸들을 한껏 붙인 채 덜덜 떨어야만 했다. 심지어 반쯤 넋이 나간 채 도착한 숙소의 샤워실은 심지어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여행 내내 한껏 들뜬 텐션을 감당하면서도 함께 웃어주었던 친구는 여행에서 단 세 번뿐이던 짜증_다른 두 번은 홍시맛 망고주스를 샀을 때와 딤섬 안의 고기가 생고기였을 때였다_을 냈고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였다면 잔뜩 처졌을 기분이었겠지만 함께한 친구 덕에 어이없던 사건 정도로 지나갈 수 있었다.


4박 6일의 코타키나발루는 즐겁고 행복했지만 순간순간을 돌이켜 보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여행지였다. 덥고 습한 날씨와 시시때때로 쏟아지는 스콜, 벌레들까지. 여름의 온갖 싫은 것들만 모아 놓은 것 같은 곳이었고, 위의 두 해프닝처럼 어이없고 짜증 나는 상황들도 잊을 법하면 수시로 찾아왔다. 하지만 친한 친구와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할 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그 친구와는 여름이 오면 항상 그때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웃고 때로는 짜증 내며 그때의 일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친구와 함께할 또 다른 여행이 기다려지게 된다. 떠나자 둘이서!


P20180624_184051597_A5F90E7E-29FF-4BCB-8AC0-F74C6705FE3D.JPG 다음에도 같이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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