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가, 여름, 그리고 물가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올해는 불볕더위가 유독 이르게 다가온 것만 같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흘러내리는 이런 계절이 갑작스럽게 시작되니 자연히 쌀쌀한 계절에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한여름이 떠오른다.
9월에 떠난 유럽은 예상보다도 훨씬 쌀쌀했다. 한국에서 9월이면 가벼운 외투 하나 걸치고도 가끔은 땀이 날 정도인데 첫 도시였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해가 질 즈음에는 티셔츠에 후드티를 껴입고도 바깥 외출을 하려면 목도리가 필수였다. 이동을 거듭하며 점점 대륙 남단으로 이동했지만 시간도 함께 흐르고 있으니 날씨는 추워질지언정 더워지지는 않았다. 그러기를 한 달. 10월 중순, 크로아티아로 넘어오고서 초여름 날씨의 스플리트를 지나 한여름 같은 날씨의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가을에서 시작해 겨울에 끝날 여행이기에, 그리고 미리 확인해봤던 일기예보에서의 두브로브니크는 가을 날씨였기에 캐리어에는 온통 긴팔, 긴바지와 보온용품들 뿐이었다. 입을 수 있는 옷들 중에서도 가장 얇은 옷차림을 했지만 작열하는 햇빛에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땀은 어쩔 수 없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석양이라는 말에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투어 신청까지도 해 놓고 남는 건 그날의 아름다웠던 석양이 아니라 날씨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서 더위에 허덕이던 모습이었을 정도였다.
해가 지고서도 사라지지 않던 열기를 떠올리며 아침 일찍부터 도시 관광에 나섰지만 그조차도 무의미한 노력이었다. 분명 아침 9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도 햇빛은 선글라스를 뚫고 들어와 눈을 부시게 했고 옷들은 땀으로 흠뻑 젖어갔다. 찬란한 하늘과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맑은 해변, 붉은 지붕의 오래된 건물들까지 휴양 도시에 꼭 들어맞는 풍경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해 관광은 빠르고 굵게 끝내야 했지만 가끔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반팔과 반바지였다면, 하다못해 둘 중 하나라도 있었으면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남북으로 긴 나라인 크로아티아의 말도 안 되는 물가 차이는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도가 가장 물가가 비싸고 외곽으로 갈수록 물가가 싸지는 것과는 달리 남부로 갈수록 규모가 큰 관광도시가 위치해 있는 크로아티아는 북쪽의 수도가 가장 저렴한 물가를 자랑하며, 남쪽으로 갈수록 물가가 급등하는 양상을 보인다. 사전조사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역시 체감은 달랐다. 여행 일정상 북쪽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출발해 플리트비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순으로 내려오면서 물가는 눈에 띄게 비싸졌고 자연스레 식사의 질을 낮춰야만 했다. 먹는 것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식사의 선택지가 줄어들자 와닿는 것이 달라졌다. 여행자들이 도시의 물가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케밥을 기준으로 했을 때, 두브로브니크의 케밥은 자그레브의 케밥보다 3배에서 3.5배가량 비쌌다. 지갑 사정이 가벼운 여행자들의 맞춤 식량인 케밥도 두브로브니크에서라면 고급 음식이었다. 다른 도시들에서는 박물관을 전전하느라, 배가 고프지 않아서, 다른 군것질로 배를 채워서, 등등 다양한 사유로 밥을 건너뛰었던 것과 달리 순전히 물가 때문에 단출한 식사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도시였다.
더위에, 물가에 허덕이며 고생길만 훤히 뚫려있었던 도시였지만 여름이 찾아오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도시, 두브로브니크. 다음에는 시원한 옷과 통통한 지갑을 준비하고 한껏 여름을 즐기러 떠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