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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스플리트

낯선 도시에서의 짧은 피서

by project A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가끔은 여유롭게


휴식보다는 박물관을, 편안한 대중교통 대신 도보를 선택했던 2달간의 유럽 여행은 결코 몸이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이왕 비싼 값 주고 간 유럽, 간 김에 최대한 많이 둘러보겠다는 욕심에 대도시는 물론이요, 온갖 소도시들을 떠돌았고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전부 가 보겠다는 듯이 열심히 뮤지엄 투어를 다녔다. 메뚜기마냥 뛰어다니냐는 엄마의 표현처럼 쉴 새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 건너 하루, 심하면 하루에도 여러 번 도시를 옮겨 다녔고, 도시의 모든 것을 보겠다는 듯이 바쁘게 발을 움직였다. 스플리트도 그렇게 거쳐가게 된 도시였다.


스쳐 지나가듯 머물렀던 곳. 추억이라 할 것도,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이 무난하게_사실 무난했다는 점이 가장 차별화된 특징일지도 모르겠지만_지나쳤던 도시, 스플리트. 할 수 있는 것도, 갈 수 있는 곳도 한정된 일요일.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듯 걸어 다닌 그날. 분위기만큼은 어느 곳보다도 여유롭고 평온했던 초여름의 하루가 문득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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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에서 내려다본 스플리트 전경





보통의 아름다움


기억 속 스플리트는 뚜렷한 색을 가지고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 거대한 고대 로마의 유적, 빛나는 푸른 바다와 바람을 따라 살랑이는 야자수까지. 스플리트는 상상 속의 '유럽의 바닷가 휴양지' 그 자체였다. 좁고 가팔라 방심하면 떨어질 것만 같았던 종탑 계단을 올라 마주한 평화로운 풍경과 시원한 바닷바람은 특별하진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산책 삼아 올라간 마르얀 언덕에서 여유롭게 노을을 보고, 숙소 근처의 작은 음식점에서 체바피 버거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 것도 평범하지만 행복했다. 일상에서도 소소한 것들_유독 맑은 하늘이나 시원한 바람 같은_에 웃음이 나듯이, 스플리트는 여행길의 흔한 하루를, 하지만 그렇기에 감사하고 행복한 가장 보통의 아름다운 날을 선사해 주었다. 딱 좋은 날씨, 알맞은 시기, 평화로운 도시에서 보낸 유럽 여행의 짧은 피서였다.


20191020-4.JPG 휴양지 그 자체인 스플리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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