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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Apr 02. 2019

아기 재우는 밤

일기의 시작

내일이면 엄마가 가신지 딱 이주일 째다. 아기를 낳는다는 소식에 지구 반대편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엄마는 기어코 백일을 넘기고 고생만 하다 가셨다. 엄마를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한 것들이 한도 끝도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고맙고 미안한 것이 밤에 아기를 맡아준 거였다. 휴직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내 어리석은 불안감과 욕심에 세 번째 책 번역을 덜컥 맡아버렸다. 매일 새벽 세 시까지 내가 일에 매달리면서 아기를 재우고 두 시간마다 깨는 아기를 먹이는 일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되었다. (그래. 난 정말 이기적인 딸년이다.)


솜씨 좋은 엄마 덕분에 산후조리 기간 동안 날마다 진수성찬을 드는 호사를 누린 터라 '이제 밥은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어깨너머로 배운 엄마의 노하우와 무심결에 흘려들은 엄마의 잔소리가 제법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먹고사는 것은 그럭저럭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그런데 매일 밤 아기를 재울 때마다 문득문득 실감이 나는 엄마의 빈자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백일이 지나고 나니 확실히 아기가 잠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요즘은 아홉 시에 잠자리에 들면 한 시쯤 먹을 것을 찾고 다섯 시나 여섯 시까지 내리잔다. 어찌나 신통하고 고마운지 효자가 따로 없다. 그래도 폭 잠들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법. 보통 낮잠은 아기가 놀다가 스스로 졸려하는 경우가 많아서 재우기가 훨씬 수월하다. 기분 좋게 잘 놀다가 갑자기 '낑낑' 하기 시작하면 (배고플 때 '낑낑'과 사뭇 다른 '낑낑') 가슴에 폭 안아 올려 짐볼에 앉아 가볍게 통통 튕겨주면 어김없이 하품을 하고 단잠에 빠져든다. 하지만 밤잠은 더 놀고 싶은데 억지로 재우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엄마가 늘 하던 대로 아기를 가벼운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 조명을 낮춘 후 네 시간 연속 재생되는 모차르트 연주곡을 튼다. (유튜브 짱!) 아기 옆에 나란히 누워서 가슴을 살살 토닥이며 '코~ 자자' 하고 나직이 되뇌어 보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볼에 뽀뽀도 쪽 해 준다. 물론... 이렇게 해도 안 잔다. (이렇게 쉽게 잘 리가...) 밤잠엔 역시 젖꼭지, 일명 '쭈쭈'가 필요하다. 요새는 이가 나는지 자꾸 뭔가를 물고 싶어 해서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역시 쭈쭈 만한 것이 없다. 물론...... 이렇게 해도 안 자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면 그렇지...)


우는 아기가 안쓰러워 품에 쏙 안아주면 왜 이제 안아주냐는 듯 서럽게 울다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나같이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도 엄마라고 품에 안으면 이내 잠이 드는 아기를 보면 신기하고 또 고맙다. 우리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깨가 떨어져라 매일 밤 손주를 안아 재우는 엄마에게 육아책을 들먹이며 버릇 나빠진다고 모진 말을 쏟아냈던 내가 한없이 창피해진다.


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말,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싫었는데 겪고 보니 정말 그렇다. 쪽쪽 열심히 빨던 쭈쭈가 똑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이제 됐다' 하는 안도감에 숨죽여 웃게 된다. 잠이 든 아기는 배냇 웃음을 씰룩씰룩 웃다가 갑자기 '앙' 하며 울기도 하고 놀란 듯이 양팔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갓 태어났을 때는 잘 때 하도 용을 써서 병원에 가서 보여주려고 동영상도 열심히 찍었더랬다. 이제는 용쓰는 것도 거의 없어지고 이따금씩 놀랄 때 가슴을 톡톡 두드려주면 다시 잘 잔다. 이렇게 잘 자 주는 것이 그저 고맙고 대견하다. 꿈에서 우유를 먹는지 조그마한 혀를 빼꼼 내밀고 입을 오물오물 거리며 자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귀여워서 나는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게 된다.


아기가 깊이 잠들면 모처럼 자유 시간을 얻은 기분이라 아무리 피곤해도 그대로 자기가 아깝다. 그래 봤자 결국 또 스마트폰으로 아기 사진을 뒤져보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너무 달다. 그래서 오늘 문득, 앞으로 이 달콤한 시간에 아기를 위한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한)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시절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아기가 잠을 자며 자라는 동안 나도 엄마로 자라날 것이다. 하루하루 엄마가 되어가는 지금의 내 모습을 이십 년 후 지금 내 곁에서 평화롭게 잠든 아기에게 선물하고 싶어 졌다. 아기 재우는 밤, 또 하루 엄마가 되어가는 밤, 그렇게 또 우리 엄마가 생각나는 밤, 이 밤을 고이 추억하려 한다.


낭만적으로 끝내기엔 너무 피곤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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