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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Aug 24. 2021

나무늘보의 슬로우라이프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 보이는 것들

   삶에서 불행의 순간은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나에겐 그날은 어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퇴근길이었다. 신호와 교통 정체로 늘어선 차들로 멈춰있던 차 안에서 휴대폰이나 확인하려던 그 찰나,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연속으로 들이닥친 두 번의 충격으로 온몸이 휘청거렸다. 바로 뒤에서 들이받은 차로 인해 내 차가 밀려 4중 추돌 교통사고가 났고 부딪힌 충격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나의 첫 애마는 결국 폐차하게 되었다. 전에도 한번 가벼운 교통사고 난 적이 있었으나 근육 뭉친 증세는 며칠 치료받고 나니 없어졌던지라, 며칠 이러다 말겠지 하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차가 많이 찌그러진 만큼이나 이번엔 달랐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고, 자다 깨서 '아... 아프다'하는 생각을 하다 다시 잠들곤 했다. 맥박수, 혈압은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티브이를 봐도 멍 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았고, 매달 쓰던 이체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고, 걸음은 더 이상 빠르게 걸을 수도 없어 퇴근할 때면 퇴로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라 제일 먼저 사무실을 나서지만 회사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이들이 모두 나를 앞질러 회사를 빠져나갔다. 하루에 잠을 미친 듯이 네 번씩 자곤 했다. 점점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져 휴직 직전에는 회사에선 탕비실 스탠딩 데스크에서 서서 일하곤 했다. 말로만 듣던 교통사고 후유증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얼마 전 상사가 서울사무소로 옮기면서 상사의 업무를 내가 도맡아 하고 있던 터라 대체인력이 없었기에 자리를 무작정 오래 비울 수 없었다. 매주 써버린 28개의 휴가와 밥 먹듯 한 조퇴, 그리고 재택근무 병행에도 한계에 다다랐다. 1년이 지나 오히려 증세가 악화되어 버티다 못해 마침내 휴직계를 냈다.


   급한 성미 때문에 회사에서도 '빠른 손'으로 불리며 자료 요청에 빨리 대응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고, 남들보다 빠르고 많은 것을 해내는 것을 스스로도 즐겼다. 그래서 상대편의 속도가 느리기라도 할 때면 고구마 막힌 것처럼 답답해했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뒤론 머리 회전도 신체적인 반응속도도 모든 게 느려졌다.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누워있는 나날들이 일상이 되고, 목의 통증으로 두통이 부가적으로 생겨 머리 회전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슬로우 라이프가 나의 삶에 들어왔고, 나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빠르게 그 삶에 적응했다.


나는 이전과 같은 빠른 스피드와 추진력으로 다양한 결과물들을 더 이상 낼 수는 없었지만, 나의 삶의 템포가 느려지자 전에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차차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빠른 속력의 자동차는 목적지에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지만 차 안에서 스쳐가는 풍경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던 순간 볼 수 없었던 작은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멍 때리며 있노라면 창문 너머로 들리는 골짜기 계곡 물소리와 개구리, 매미소리, 그리고 책상을 가득 비추는 햇살과 창밖으로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


   

   그런데 느린 속도의 삶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시간은 훨씬 더 빨리 갔다. 이상하리만치 신기한 일이다. 그전에는 영어 혹은 일어 전화 외국어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회사를 다녀와선 수영을 갔다가, 수영을 마친 뒤 집에서 세무 관련 인강을 듣거나 수영 수업이 없던 월요일에는 요가, 헬스나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꽉 찬 하루를 보내던 그때에는 오히려 하루가 더디게 간 느낌이다. 


   요즈음엔 9~11시쯤 내 눈이 떠지는 대로 기상해서 빈둥거리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한숨을 잔다. 노곤할 때면 때론 두세 번씩 낮잠을 자기도 한다. 누워서 유튜브 보는 건 일상이고, 그러다 이따금씩 인생을 허송세월 하는 듯해 아까운 생각이 들 때면, 가끔 인강을 켜보는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유일한 나의 제일 큰 이동 동선은 병원 치료를 위한 외출이었다.


    속도의 모순이랄까. 따지고 보면 하는 일이 거의 없이 느린 하루지만 하루는 정말 금방 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지금은 내가 원하는 일들로 삶이 채워지고 오롯이 내 신체의 속도에 맞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힘들더라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싫다는 의무감에 가득 채워놓은 일정으로 하루가 길고 더딘 느낌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업무 중간에라도 짬 내서 그날 즉시 처리를 하지 않고는 못 견뎠던 개인적인 사무들도 시간이 남아도는 지금은 오히려 내일로 더 미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일로 미뤄도 나쁘지 않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내일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었고, 오히려 늦게 처리하다가 문제가 해결되거나 더 나은 결정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삶의 속도는 천천히 느려져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그리고 느린 삶 속에서 망가졌던 몸이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회복하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느린 템포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내 몸이 얘기하는 신호를 알아채고 내 컨디션에 맞춰 움직였다. 빠른 속도 속에서는 목표하는 바와 외부만을 바라보느라 미처 나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다면, 슬로우 라이프 속에서는 나는 온전히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며칠 전 닮은 동물 찾기 어플에서 나무늘보가 나왔다.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라이프 패턴이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18시간을 자고, 소화를 오래 시켜 밥도 띄엄띄엄 먹고, 며칠에 한번 화장실 갈 때에만 나무에서 내려오고, 짝짓기도 귀찮아 평생 혼자 산다는 나무늘보. 

나무늘보가 보는 세상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세상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낄까 아니면 오히려 느린 속도로 우리보다도 세상과 자신을 더 유심히 잘 지켜보고 있을까? 

  치타와 사자의 속도가 기준이 되어야 맞는 세상일까 아니면 늘보의 속도가 어쩌면 정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다양해지면서 옳다고 믿었던 시각이 뒤집혀 정반대의 관점을 가지기도 해, 이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오히려 더 흐려지고 있다. 

어쩌면 절대적으로 옳은 것 자체가 예초에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그래서 남은 휴직 기간 동안,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던 갑자기 찾아온 나무늘보의 라이프 스타일을 조금 더 즐겨 보자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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