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매불망 꿈에만 그리던 유럽에 감격스러운 첫 발을 내디뎠다. 감사하게도 직원 분께서 공항으로 픽업 나와주셨고, 선물로 가져온 소주와 김을 드렸다. 호텔로 이동하는 차량에서 나는 먼저 제일 궁금했던 한국 식당이나 식료품 가게, 코리안 타운 등을 여쭤봤다. 나의 기대와 달리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없다'였다. 정착 시 도움받기는커녕 그리운 한국음식을 이따금씩 먹기도 힘들겠고,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인데 한국인이 거의 없으니 결혼도 당분간 하기 힘들겠고 가족과 함께 와서 살지 않는 이상 외롭겠다란 계산부터 되면서, 5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스치는 자그레브의 밤 풍경과 복잡한 내 머릿속을 헤치고 도착한 호텔방은 혼자 쓰기엔 너무 컸다. 큰 베드룸 하나와 널찍한 리빙룸까지 있어 가족들끼리 단체로 와서 묵어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리빙룸에서 혼자 티브이도 켜보고 냉장고와 책상도 요모조모 구경하며 놀다 지겨워지면 침실로 들어가 넓은 침대에 혼자 누워도 보고 셀카도 찍고 요리저리 놀다가, 문득 이 큰 공간에서 혼자임을 깨닫자, 방 크기보다 더 큰 허전함이 찾아왔다. 가족들이 떠올라 통화를 시도했다. 잘 도착했다고... 떠들썩한 대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고 나자 아까보다 더 커져버린 그 적막감에 다시금 외로움이 찾아왔다.
첫 사무실로 출근길. 아침 호텔 조식을 먹고 로비에서 직원분과 만나 택시를 탄다. 회사와 맺어져 있어 언제든지 호텔 직원에게 얘기하면 택시를 호출해줘 출퇴근이 가능하다. 택시 운전기사나 호텔 직원 등 콧대 높기로 유명한 유럽인이 좋은 회사 다니는 거라며 입에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해외에 나와보면 유명가수나 건실한 기업 하나가 외교관보다 백배 낫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무실은 명실상부 최고기업답게 시설이 무척 좋다. 좋은 회사는 직원의 복지를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최고의 근무환경에서 최고의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리라. OJT를 들으며, 기존 다니던 외국계 회사가 해당 국내 기업 계열사에서 유럽계 회사로 M&A 되었던 터라, 일하는 시스템이나 방식이 무척 비슷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어 보일 듯했다. 이런저런 교육을 듣는데 흥미로웠다.
교육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나름 유명한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가주셨다. 동유럽은 음식이 무척 짠데, 예전에 소금이 귀해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던 습성이 남아, 음식이 전체적으로 짜다고 한다. 스테이크를 먹어도 고기에 절인 듯한 소금 맛, 스파게티도 소금 맛, 심지어 중국식당을 가도 조금 덜 짠 소금 맛이다. 어떤 요리를 먹어도 그냥 소금을 집어 먹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나마도 좀 덜 짠 식당을 데려가 주셨을 듯한데, 어딜 가더라도 동유럽 특유의 여전히 짠맛은 어쩔 수 없었다.
소금으로 혀를 호되게 당한 나는 그다음 날은 볼에 커다란 뾰루지 공격을 한차례 받았다. 유럽은 물이 석회질로 수질이 안 좋은 것을 소문으로 전해 들었으나, 실제 피부가 뒤집어지니 적잖게 당황했다. 그래도 나름 5성급 호텔인데 수도시설이 불량 할리 없고 예민한 피부로 물갈이를 제대로 한 나는 2주 가까이 유럽에 머물면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한동안 한쪽 볼만 볼터치한 느낌으로 주홍글씨처럼 빨강 뾰루지를 내내 달고 살았다.
비록 교육이지만, 주말에도 토요일은 출근을 해야 했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주말 근무가 자연스러운 흔한 분위기일 것이리라. 오전 근무가 끝나고 OJT 담당 직원과의 점심 식사 후 나는 자그레브 관광을 시작했다. 맑은 날 유럽은 정말 예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동유럽은 한없이 우울해진다. gloomy 하다는 표현이 딱 적합할 만한 우중충한 날씨에 평소 가고 싶었던 2시간 거리의 아바타의 모티브였다는 플리트 비체를 갈까 말까 망설이다 이내 포기해 버렸다. 왠지 여기서 일하게 된다면 맑은 날 쉽게 갈 수 있을 기회가 충분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크지 않은 자그레브 시내를 우산을 쓰고 돌아보는데,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유럽 이건만 하필이면 가족과 함께라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분위기에 혼자라는 생각(우리나라는 성탄절이 연인과 함께인 느낌이나 외국은 정말 가족과 함께 집에서 보내는 분위기다. 뉴욕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우리나라 설날이나 추석 명절 당일처럼 식당이나 카페, 상점도 일찍 문을 닫는 곳이 많아 정작 친구들이 크리스마스라고 뉴욕으로 놀러 왔으나 문을 닫아버린 가게들에 시내에서 이야기 나눌 한 장소조차 마땅치 않았다.)과 겨울의 추운 날씨, 그리고 보기만 해도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에 왠지 신이 나질 않았다.
또 한국에서 당시 내가 소유한 오피스텔에 신문에 날 법한 부동산 사기 문제가 생겨 정리 중이었기에 혹시나 관련 전화가 걸려올까 유럽에 있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가면 처리해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유럽 취업이 된다면 당장 부동산을 팔 수도 없는데, 5년 노예계약 동안 언니에게 부동산을 위임장 서류를 써주고 모두 맡겨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 또한 보통일이 아닐 듯 하단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침내 교육기간이 끝나갈 때 쯔음, 급하게 면접 일정을 잡아 갑자기 유럽으로 온 것을 내내 미안해하시던 팀장님의 질문, "좀 더 머물면서 교육을 했으면 하는데 안 되겠지요?"라고 조심스레 물어보신다.
평소 어른들이 여쭤보시면 '네'라 답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그리고 유럽에서 좋지 않은 기억과 한국에서 돌아가 정리해야 할 것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만 "네"라고 마음의 소리를 내뱉고야 말았다. 취업을 위한 정답은 "아닙니다. 남아서 교육을 받겠습니다."라고 답했어야 맞는 것인데 이건 머 거의 취업포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답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돌아와 들은 피드백은 능력은 충분하나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였다. OJT를 해주던 직원들끼리 대화에서 좀 전에 현지에 어느 팀 모 대리가 지원했더라 하는 얘기가 떠오르며, 채용공고 사이트에 지원했다는 그 대리의 팀의 채용공고가 올라온 것을 보고 현지에 이미 안정적으로 정착해 있는 직원의 Job rotation으로 대체되었구나란 자연스러운 추측을 했다.
해외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언제나 열정이 많던 나였는데,
불현듯 내가 이리도 소극적으로 변한 것은 그간의 흐른 시간 동안, 나는 어느덧 한국의 편안함에 젖어있었고, 지금의 나에게는 이전 학생 시절에 비해 잃은 것이 많아졌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취직이 된 것도 아닌데 OJT 면접 출국길에 나를 부여잡고 우시는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한국에 계실 어머니,
한국에 정리되지 않은 부동산,
유럽에 가버리면 한참 예쁜 시기에 추억을 더 이상 함께 나눌 수 없을 조카의 어린 시절...
한국의 물 좋은 온천과 200% 한국 입맛인 내가 먹을 수 있었던 떡볶이, 어묵탕을 비롯한 (떡볶이는 외국에서 최소 만원 이상이고, 어묵탕은 찾기 조차 힘들었다.) 매일매일 일상의 평범한 한국 음식,
한국에서의 친구들, 익숙한 생활 반경과 공간, 이방인이 아닌 편안함 등
내가 쥐고 있는 것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때 내가 가진 것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빈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기에, 결국 내가 손에 쥔 것의 총량은 항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잃은 것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내가 얻을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내가 얻은 것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잃은 것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렇게 내가 소유한 소중한 것들을 지키며, 나는 새로운 기회를 놓아 버렸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 혹은 한때 유럽 환율이 요동치던 시기에는 차라리 더 잘된 일이라 위안 삼으면서...
여러분이 지금 기회를 놓쳤다면, 실망하지 마세요.
당신은 무언가를 놓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킨 것이기도 합니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렸다면, 너무 조바심 내지 마세요. 곧 새로운 무엇이 나타날 거예요.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면, 더 이상 내려놓은 것에는 미련 두지 마세요.
결국 내가 가진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