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Plan D

[두 살배기 2.1] 퇴사 생존 전략

by 라벤더핑크

제1안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해 대체안을 세우는 것을 'Plan B'라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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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실패 확률이 훨씬 높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과연 Plan B만으로 충분할까?


막연히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에 습관처럼 사표 쓰고 싶다 내뱉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적어도 Plan D까지는 준비한 뒤 사표를 던져도 늦지 않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랬을 때 퇴사 후 Plan B가 엇나가거나, 생각처럼 일들이 풀리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고 좀 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회사라는 굴레 안에서는 탈출하고 싶은 지겨운 곳에 지나지 않지만, 야생과도 같은 회사 밖 세상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 많이 숨어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나온 세상을 최소한 회사 안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상비약쯤이라 칭하고 싶다.





보통 이직을 할 때 많게는 한 달 혹은 적어도 1~2주의 휴식기를 가지며 이직을 하여 해외여행이나 충분한 휴식 및 준비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첫 이직 시에 떠나가는 회사는 notice를 사전에 충분히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뽑는데 신중했던 첫번째 회사는 경력직을 심사숙고하며 고르느라 늦어져 시간이 부족해 하루라도 결산을 해달라 사정했고, 새로 입사한 이 곳 회사에서는 자리가 공석인지라 하루라도 빨리 들어와 업무를 배우고 채워주길 원했다.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퇴사일 8시까지 야근하면서 그것도 마지막 회식 자리에 주인공이 왜 이렇게 늦냐는 재촉 전화를 몇 차례 받고 나서야 비로소 회사를 나섰다. 늦게까지 회식한 , 다음 날 숙취가 풀리지도 않은 채 이삿짐을 마저 싸서 이사를 하고 주말 짐 정리도 미처 마무리 못한 상태로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여, 그 뒤 쭈욱 휴가 한번 제때 써보지 못하고 높은 업무강도로 4년을 달려왔던 터에 건강까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라 휴식의 시간이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그래서 두 번째 이직 시에는 반드시 남들처럼 보란 듯이 해외여행도 다녀오는 휴식기를 가지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네임밸류의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는 직장을 나오기까지 그리 쉽게 결심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내 나이를 냉정한 인력시장의 잣대에서 보자면,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란 다가오는 빠른 시기에 곧 업무공백을 가져 올 높은 위험요소의 확률과 회사에 추가 비용을 가져올 가진 인력이고, 더구나 나의 포지션은 단순히 산후 대체인력으로 쉽게 인력을 구해 대체될 자리도 아닌 중간관리자 혹은 매니저 레벨이었다. 고용 후 산후 휴가를 낼 것이 불 볼 듯 뻔한 여성인력인 나는 남자였더라면 더 좋은 커리어로 나아갈 수 있음 직한 적당한 경력의 나이가 단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발목 잡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조바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채용시장에서 회사를 끼고 있는 직원과 이미 회사를 퇴사한 직원의 값어치를 다르게 본다는 사실도 이직이 아닌 퇴직에 대한 결심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재직 중의 직원은 좀 더 아쉬울 것이 없다고 보기에 회사 입장에서도 좀 더 높은 몸값에 더 데려올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일단 헤드헌터에 이력서를 올리고 기다렸다.

하루에 3~4통의 전화가 울리자, 나는 비로소 퇴사를 해도 되겠다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심지어 들어가기 바늘구멍이라 인력 알기를 우습게 여긴다는 콧대 높은 외제차 회사 본사의 포지션 제안 전화가 왔다. 당시 차알못이었던 나는 초성만 듣고 듣보잡 회사인가 하고 (어차피 당시에는 이력서 등록을 한 것은 취업시장에서 나의 위치 파악이지 이직 목적이 아니었기에) 오만하기 그지없게도 메일로 JD (Job Description)를 보내주시면 검토해보겠다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 후에 시간이 지나 메일을 열어 full name을 봤을 땐 아차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이력서를 올림으로 인해 헤드헌팅 시장에서 내 위치를 파악하여 일을 관둔 후 휴식 후 복귀 시 리스크를 사전에 확인하고 싶었다. 반응은 내 나이로서 지방은 좀 고군분투할 수 있겠으나, 서울 쪽으로 이직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포지션이 많고 만혼의 싱글들이 많은 분위기라 우려했던 것보다 나쁜 편은 아니리라 판단했다.


이에 나아가 퇴사 후 플랜을 B 가 아니라 D까지 세웠다.


Plan A) 타 부서로 Job rotation

Plan B) 유럽 진출 (최소 석사 혹은 취업)

Plan C) 국내 외국계 회사로 재취업

Plan D) 공인중개사 자격증 획득 등 자영업 사업자로 전향 혹은 영어 과외


그저 대안만 적었을 뿐인데, 나는 갑자기 나에게도 던질 패가 꽤나 있다는 것에 천군만마를 얻은 양 든든해졌다.


그제야 나는 이제는 사표를 던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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