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군대였다.

[두 살배기 2.0] 전사의 후예

by 라벤더핑크
그곳은 군대였다.


전무님의 부름에는 지체 없이 방으로 뛰어가야 했고, 매니저가 명령하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총칼만 안 들었지 흡사 결산이라는 전쟁을 앞둔 군인과 같았다. 어느새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포탄을 쏘듯 빠른 속도로 상사의 미션을 완수하고, 회사의 비용을 예산보다 많이 쓴 타 부서 적장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용맹한 군사로 훈련되고 있었다.

실제 군대로 불러졌던 것이 웬만한 장정들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제대를 했다. 내가 일한 부서는 이직률이 무척 높은 곳이었다. 업무강도도 높고, 무엇보다 상사가 만드는 스트레스가 높았다. 그래서 여자는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해 애초에 뽑지 않았다고 하는데, 영광스럽게도 부서 역사상 두 번째로 뽑힌 여직원이 되었다. 흡사 군대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 지금도 회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회사 축구장에서 부서원들이 축구하는 풍경이다. 제대 후 왜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입이 마르고 닳도록 하는 건지 왠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게 그곳은 내게 철저히도 군대였다.




한 살 배기의 캐나다 교환학생으로 든든한 나이테의 토대를 마련한 나는 미국 인턴쉽으로 선발되고, 그렇게 원하던 외국계 기업으로 취업하게 되는 등 연이어 폭풍성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파죽지세를 이어받아 캐나다와 미국을 떠날 때 나의 계획은 지원요건인 5년 정도 경력을 쌓은 뒤 해외 MBA나 석사과정을 밟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단지 경력과 학비를 얻기 위해 회사를 입사했건만, 외국의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내가 점차 회사란 속박에 익숙해지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안정감을 느끼고, 한국의 편안함에 길들여졌다. 또, 업무만으로 이미 체력이 고갈되어 달콤한 휴일이 찾아와도 더 이상 내 꿈을 향해 도전해볼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MBA는 경영학부생이 아닌 타전공자에 좀 더 적합한 과정이란 것을 깨달으면서 이미 경영학부생인 나에게 가성비 대비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고, 나는 해외로 다시 나가겠다는 오랜 꿈을 마음 한 구석에 고이 접어둬야 했다.


나의 에너지를 모조리 흡수시키며 내 꿈을 주저앉힌 곳은 내가 두 번째로 일했던 스웨덴 계열의 외국계 회사다. 7시 출근 4시 퇴근하는 곳이었는데, 저녁 8시(9시 시작하는 회사로 치자면 10 시 마친 셈)쯤 퇴근하면 오늘 좀 일찍 간다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늦게까지 일한다고 해서 설렁설렁 일하는 게 절대 아니다. 시험기간 빠짝 긴장한 학생처럼 초집중한 상태로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화장실에서 좀 오래 앉아 있는다 싶으면 매니저로부터 칼같이 찾는 전화가 걸려온다. 식사하러 갈 시간이 없어 회의실에서 점심, 저녁을 컵라면으로 두 끼 모두 때운 적도 있었다. 경영 계획을 세우는 기간이 되면 2주 넘게 12시 넘게 일한 적도, 최대 새벽 4시까지 일한 후 기숙사에서 눈만 잠깐 감았다 다시 출근한 적도 있었다. 화장은 애초에 포기했고, 스킨, 로션 바를 시간도 없어 그야말로 순도 100% 쌩얼로 출근해야 했던 때도 많았다. 난 그렇게 철저히 여성성을 버리고 군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덕분에 내 업무 스킬은 무적 정예부대의 밤샘 폭풍 훈련 끝에 제대할 쯤엔 어느새 만렙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쌓여가는 업무 스킬에 역주행하듯 나의 건강은 연일 곤두박이칠 치고 있었다.


20 년 넘게 잔병치레는 해도 큰 병 한번 안 났던 나였지만, 이 정도 업무강도에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새벽 4시 밤샘근무를 한 그 달에는, 코피가 한 달에 4~5 차례나 나곤 했다. 오기였고 집착이었을까. 난 그렇게 몸에서 계속해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데도 스스로 애써 모른척했다. 마침내 그 집착을 놓게 된 것은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 뒤다. 심근경색이셨다. 평소 건강해 보이셨고 아직 돌아가실 연세는 아니란 생각에 전혀 예상 못했던 이별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던 터라 더욱 큰 충격이었다. 죽고 나면 돈이든 커리어든 모든 게 부질없다는 그 당연하고도 누구나 다 아는 진리를 어리석게도 직접 겪고 나서야 깨달으며, 난 비로소 일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아버릴 수 있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 의지를 불사르던 군인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의가사제대를 선택한 것이다.


유관부서로 옮겨 일을 해 보았으나 음식을 먹거나, 기온 변화가 급격하거나, 잠을 푹 자지 못하면 시시때때로 나오는 코피는 멈추질 않았다. 무엇보다 바뀐 곳도 하는 일이 비슷하다 보니 원가팀 출신의 상사였고, 출신답게 하드코어적 리더십에 팀원들은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으며 건강에 대한 인식이 360도 바뀐 나는 이제 나도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회사 내에서도 내 커리어와 다소 무관하지만 비교적 stress -free 한 환경에서 칼퇴가 가능하고 name value가 좋았던 회사를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부서로의 Job rotation이라는 옵션도 주어졌으나, 나는 오래전 접어둔 나의 또 다른 꿈에 한번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두 살 배기의 화려한 서막을 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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