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동화 재구성
동화 이름 '아기돼지 삼 형제'보다 어느 삼겹살 가게 이름 '돼지고기 삼 형제'가 먼저 떠오르는 속세에 찌들어버린 지금의 나이에, 자기 전 습관처럼 책을 읽어 달라는 예쁜 조카들 덕에 30년 훨씬 전에나 읽어 보았던 둘째 돼지가 집을 지은 재료가 무엇이었는지 기억 저편에서 가물거리는 아련한 동화책을 다시금 펼쳐 들고 조카들에게 읽어주는 재미가 새삼 솔솔 하다. 애써 주인공과 악당을 빙의를 오가며 아이들을 달나라 토끼가 사는 저 신비롭고 먼 상상력의 나라로 모두 끌고 가기란 나같이 무뚝뚝한 표현력과 알토 저음의 한 톤만 가진 사람에게 한걸음조차 떼기가 천근만근으로 버겁지만, 다시 읽어도 주옥같은 스토리의 동화들이 이제는 어른의 시각에서 새롭게 다가온다.
집보다 나은 곳은 없어. 아이들의 동화는 단지 아이들이 흥미를 끌도록 아이들의 언어로 미화되었을 뿐, 성인인 어른이 다시 읽어도 명확한 기, 승, 전, 결에 박진감 넘치고 몰입도 높아 지루할 틈 없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자랑하며, 그 안에는 나름 훌륭한 교훈과 따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동화의 재구성과 재해석의 묘미가 있다.
빨강 구두가 인상적이던 '오즈의 마법사'란 동화의 경우, 혹자는 도로시가 만났던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의 세 친구는 별개의 인물이 아닌 도로시의 내적 자아로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울 때 위험에 직면하는 거야 지혜, 사랑, 용기가 부족했던 도로시가 험난 모험과 여정을 통해 부족했던 부분을 스스로 극복하여 채우고 그토록 바라던 집으로 데려다 줄 빨간 구두까지 획득하여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간 이야기로 재해석해 본 것이다.
놀랍게도 마치 평행이론처럼 이는 나의 상황과도 제법 비슷하다. 사실 지금 생각이지만, 과연 당시 별 걱정 없고 현실에 만족했다면 내가 집을 떠나 머나먼 캐나다란 곳으로 떠날 그리도 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게다가 벗어나고자 선택한 길인 교환학생은 넘어야 할 고개가 많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걸으며 나의 허수아비의 지푸라기 같았던 머리는 영어의 지혜로 채워졌고, 양철 나무꾼의 기름칠한 손과 도끼로는 생활비를 버는 능력을 발휘했고, 겁쟁이 사자처럼 새가슴이던 나의 마음은 용기 있게 서쪽 마녀와 맞서듯 부모님의 반대도 이겨내며 덤으로 그 안에 담긴 부모님의 사랑도 깨달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혜, 사랑, 능력, 용기를 가득 찬 나를 발견하며 그토록 바라던 빨간 구두표 캐나다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검어쥐게 된다.
마음은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가에 판단되는 거야. 때때로 살다 보면 신이 나만 미워하는 건 아닌지 왜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시나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돌이켜 보면 감사하게도 신은 딱 내가 이겨낼 정도의 고통만 주신 거 같기도 하다. 이런 고난의 시간들은 오히려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를 성장시킨 가장 영양가 많은 비료는 8할이 아마도 시련이라는 성분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무척 재미있게 본 오즈의 마법사. 그 명대사 중 일부를 잠깐 소개합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중 도로시와 허수아비의 대화뇌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죠? 나도 몰라요. 하지만 사람들도 생각 없이 말을 하지 않나요?
마음은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가에 판단되는 거야.
진정한 용기는 두려울 때 위험에 직면하는 거야
내가 사랑에 빠진 동안 나는 지구 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어.
경험을 통해서만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단다. 세상을 오래 살수록 그만큼 경험도 쌓이는 법이야
행복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거야.행복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거야
빨간 구두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줘. 그래서 나는 빨간 구두를 사랑해
(중요한 것은) 네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닌 그 길에서 누굴 만나느냐이다.
네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닌 그 길에서 누굴 만나느냐이다.
그 시기에 내가 이겨 낼 수 있을 만한 적절한 시련과 그에 따른 학과 생활의 멈춤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좀 더 빠른 졸업과 적당한 회사에 적당한 취업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만 과부하가 걸려 멈춰버렸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막힘없이 줄곧 걸어온 정규 교과과정 대신 비어진 공백에 또 다른 무엇인가로 끊임없이 나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안에 크고 굵직하며 다른 나이테들의 토대가 될 첫 번째 나이테를 서투르고 투박하지만, 나의 떨리는 손으로 서서히 그리고 촘촘히 그려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