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다니던 동아리 두 곳에서 각각 남자 선배로부터 대시를 받았다. 한 명은 전혀 남자로 안 보이던 무리에서허물없이 농담과 장난을 던지던 흡사 여자 선배 같은 느낌의 친한 선배였고 또 다른 한 명은 대화 몇 번 안 해본 얼굴만 익은 선배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장돌처럼 뜬금없이 날아들어온 이 두 극과 극의 캐릭터의 고백에 여중 여고를 졸업해 여자들만 있는 분위기에 안락함을 느끼던 골쏠 (뼛속까지 모쏠)이었던 나는 놀란 나머지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선배는 부끄러우니 본인이 대시한 일을 비밀로 묻어 달라 얘기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에게는 언젠가 알아도 알려질 일, 비밀로 묻었다 다른 사람 통해 얘기를 들으면 뒤통수 맞은 것처럼 느껴질까 걱정했던 나는 소문내지 말라 당부하며 얘기했다.
그렇지만, 비밀로 묻고 싶다면 입의 무게를 믿지 말아야 했던 것일까…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었는지 친구들은 가볍게 주변인들에게 알렸고, 내 연애사가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변인들에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 당시 엄청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상대편은 얼마나 더 힘들까 싶은 마음에 어제는 내 집 안방 같던 동아리방이 오늘은 가시방석 마냥 불편해져 버렸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과 마주칠 때마다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급기야 동아리에 나가는 것이 꺼려졌다. 이래서 CC는 못하겠구나... 겨우 고백받고 이런데 사귀다 헤어지면 진짜 둘 중 한 명은 나가야 하겠구나.
그러던 찰나, 띠로리~
구세주와 같은 언니가 교환학생이란 것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언니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는데, 본인은 이미 지원시기를 놓쳤으니 나에게 한번 지원해 보라며 귀띔해 준 것이다. 당시의 나는 친한 친구들만 어울려 다니던 말수도 많지 않고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나에게 외국생활이란, 게다가 여권이나 토익점수조차 없었던 내가 외국대학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그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칭찬 일색이던 교환학생 수기를 하나 둘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니, 잔디 깎기 기계 대신 풀어놓은 토끼가 뛰노는 초록빛 캠퍼스와 관광지의 예쁜 꽃빛 항구가 있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캐나다 빅토리아 섬에서 어느새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나의 마음은 이미 태평양을 건너 토끼와 함께 뛰어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휴학 후 일 년 교환학생을 갔다 오면 자연히 불편했던 사건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옅어지고 불편했던 사람들과도 자연스레 거리가 생길 것이리라.
가고싶다.
가야겠다.
결심을 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별것 아닌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겠지만, 연애 경험도 없고 수줍음 많던 새싹 같던 그 어린 시절의 나에겐 처음 받아본 대시가 하나라도 벅찬 판국에 둘씩이나, 평화롭던 학교 생활이 모두 뒤죽박죽이 돼버린 것만 같았다. 나의 용량은 거기까지 였는지, 머리 속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싸하고 평범하기만 했던 내 인생에
갑분핫 [갑자기 분위기 핫],
갑분교 [갑자기 분위기 교환학생]!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오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내 앞에는 크디큰 산,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그리고 굳게 닫힌 철문이 떡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