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개월의 급여와 명색의 대기업의 일자리를 놓아버렸지만, 그 빈자리를 인생에서 대신할 수 없는 각종 경험들로 채워 넣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업무의 일상 속에서는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경험들이다. 짧지만 5년의 업무 기간보다 어쩌면 더 강렬했을 나의 첫 번째 유럽 진출, 국내 최고 기업의 복지와 업무를 일부 간접 경험해본 것, 프랑스어 자격증 획득, 안식기의 세부 여행.
그리고 지금도 나름의 불만과 단점으로 언제든지 퇴사를 꿈꾸고도 있지만, 나름의 장점을 꼽아본다면,
칼퇴근의 워라벨과 자유로운 연월차 휴가, 그마저도 휴가를 안 쓰면 돌려주는 12월의 월급, 연월차 수당
외국계 기업 평균 급여 랭킹 50위권 (외국계 전반적으로 급여가 많이 높은 편은 아니라서 그래 봐야 국내 대기업보단 못하겠지만),
나의 집과 차가 있고 퇴근 후 수영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만족스러운 라이프,
대리, 과장급 또래들이 마음이 잘 맞아 간간이 열리는 친목 번개,
최근 실내 인테리어로 단장한 바다 뷰 맛집의 탕비실에서 오고 가는 소소한 담화,
워크숍으로 나름 해외인 대마도를 선택할 수 있는 유연함,
북미 혹은 유럽 출장 시 탈 수 있는 비즈니스 좌석,
3시 땡 하면 시작되는 직원들이 선곡한 음악에 맞춰 근골격계 질병 예방을 위한 체조시간,
그 체조시간 후 다 같이 가지는 간식 타임,
여름마다 직원 복지로 슈퍼에나 있을 법한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가득 채워진 언제라도 골라먹을 수 있는 종류별 아이스크림,
꽤 맛있는 직원식당에서의 점심,
손님들이나 직원, 출장자(특히, 해외 출장자 및 해외여행 휴가자)가 양손 무겁게 들고 와 맛볼 수 있는 각국의 달콤한 디저트와 차, 직원들이 돌아가며 손수 들고 오는 간식들,
진급이나 출산, 자동차를 사는 등 축하할 일이 생기면 관행처럼 쏘는 치킨과 피자,
직원들이 감을 잃은 것 같다며 감 좀 찾으라 들고 오신 상무님이 집에서 손수 키워 딴 유기농 감,
앙금 버터빵을 최애 하는 여직원들 요기해주신다고 한 번씩 잊을만하면 한번씩 집 근처 유명 맛집 랑꽁뜨레 빵집에서 부장님께서 한아름 사들고 오시는 빵,
그마저도 간식이 바닥나면 손님 대접용 다과를 살짝 풀어주는 센스 덕분에 주전부리 잘 안 하던 내가 살이 좀 찌긴 했지만 항상 마르지 않는 곳간을 자랑하는 곳,
근무조건과 먹는 면에서는 단연코 상위권인 일자리를 얻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못 보곤 한다.
- 헬렌 켈러 -
그래서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면, 삶에서 한 번쯤 과감하게 놓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결정이 될 수 있다.
나는 '대기업 회사'라는 문을 과감히 닫아버림으로써, 나의 휴식기를 얻었고, 쉬지 않던 업무를 놓은 그 시간 동안 업무 대신 프랑스어를 갈고닦았으며, 국민 국가시험인 공인중개사 시험이란 것도 맛보았고, 면접을 통해 내가 다니던 곳보다도 좋은 다양한 여러 회사들이 있음도 알 수 있었고, 유럽이란 갈망하던 곳에 발을 내딛을 수도 있었다. 대기업이란 명성에 눈이 멀어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했던 내가 우물을 뛰쳐나온 큰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아마 계속해서 일했더라면 남부러울 회사를 다니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 테지만, 아마 나는 유럽행이나 다른 회사라는 여러 선택 안이 있음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채 그렇게 쳇바퀴 굴리듯 반복적인 일상만 되풀이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과감히 닫아버리고 새롭게 연 문에는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항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많이 하는 타입이다. 도전을 해보지 않으면 내내 놓친 기회를 후회하다 다른 기회를 엿보다 결국 도전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일단 후회가 계속 들지 않도록 고민이 되면 일단 저질러보고 후회하는 타입이다. 안 해봐도 어차피 후회는 할 테니까.
내가 아직 열어보지 않은 수많은 문들. 그 문들 뒤에는 어떤 세상이 존재할까? 모든 문을 다 열어볼 순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계속 눈길을 끄는 문의 손잡이가 있다면, 한 번쯤 그 문의 손잡이를 한번 돌려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문 뒤로 펼쳐질 새로운 바깥세상도 닫힌 문 안에 존재한 세상에도 어차피 험난한 길도 평탄한 길도 모두 있을 테니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면, 지금 열린 문의 세상이나 새롭게 열릴 문의 세상이나 비슷한 무게의 삶이 내려온다. 단지 외양의 색깔이나 디자인만이 변할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문을 여는 것이냐 보다, 내가 어떤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사람이냐이다. 결국 신은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삶의 무게를 던져주시기 때문이다. 혹은 신이 던져놓은 많은 무게들 중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혹은 더 큰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어느 길을 가든, 어느 문을 열든, 가치 있는 삶이 따라온다. 어떤 문을 열 것인가는 마음의 소리에 한번 맡겨보고,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인가 혹은 어떤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인가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덧 두 번째 나의 나이테는 그렇게 내가 놓아버린 것의 무게만큼이나 혹은 차마 내려놓지 못한 것의 무게만큼, 그리고 내가 견딜 수 있는 무게만큼 묵직하게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