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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준철 Apr 24. 2021

유연함에 대하여

아들아 너는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살아가렴

보통 사춘기가 되면 세상에 대한 눈이 떠지게 되고 저마다 다르겠지만 '자기 자신'을 둘러싼 여러 환경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단다.


아빠는 사춘기를 험난하게 겪으면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의 기준을 명확하게 갖고 살아가는 것' 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삶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 많은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고 선생님들이나 종교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삶의 기준' 특히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많이 알고자 했고 '옳고, 그른 것'만 잘 알고 실천하고 산다면 세상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었어.


하지만 아빠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질문을 갖게 만든 두 가지 일이 있었는데


아빠가 중학생 때 세상에 나가보니 중학교 졸업을 하지 않은 이는 공장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복학한 학생을 복학생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서 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학교를 포기하고 도망가게 하려고 폭력을 행했던 학교 선생님들을 보면서 '선생님'이라는 존재들이 말하는 '옳고 , 그른 것'에 대한 질문이 생겼었고,


아빠의 할머니가 교회 건물이 없던 시절부터 헌신하고 봉사하고 기여했던 교회의 사람들이 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하던 사업이 잘 될 때는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엄청 잘했는데 사업이 어려워지니까 그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종교인'들이 말하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질문이 생겼었단다.


아빠는 이렇게 생긴 질문들로 인해서 아빠가 세웠던 '삶의 기준의 이정표'가 사라진 느낌이 들어서 꽤 많이 힘들었었어, 하지만 '책'은 '책'으로만 존재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없기에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삶의 기준의 이정표'로 삼으려고 했고 좋은 사람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다'라는 책의 문장을 아빠의 삶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마음을 먹었었고 그 마음에 대한 실천으로 고등학생 시절의 아빠는 '권위'나 '강자'에 투쟁했어.


아빠가 학생일 때는 헤어스타일에 대한 제한이 많았었는데 헤어스타일을 제한하지 않게 해 달라는 '두발제한 반대운동'에 참여를, 정치인들이 학생들을 위한 정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보고 '선거권을 만 18세로 내리자는 운동'에 참여를 하는 등 불합리 함에 대해 저항했고, 학교 공부보다는 기술 공부와 사업을 통해 경험과 경력을 쌓겠다는 당시의 한국사회가 말하는 기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10대 시절을 보냈었지


그런데 말이야 요즘의 아빠는 지난 시기를 돌아보니 아빠가 조금 더 삶과 세상에 대해서 유연했고 스스로 세운 삶의 기준에 대해서 조금 더 유연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옛날에 중국이 지금과 같이 하나의 나라가 아니고 여러 개의 나라였던 때에 송나라의 학자 정이라는 사람이 누구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불행일 수 있다며 세 가지 불행을 지적했었다고 해


인생의 3가지 불행

소년등과 부득호사(少年登科 一不幸) - 일찍 출세한 사람 치고 좋게 죽는 사람이 없다.

▶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르면 나태하게 되어 더 이상 발전이 없고, 교만해져서 적이 많이 생긴다.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 - 위세가 대단한 부모형제를 만나서 그 권세를 끼고 살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 위세가 대단한 부모를 믿고 인생의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그것이 불행이 될 수 있다.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 - 뛰어난 재주와 문장력을 가진 것이 인생의 불행이 될 수 있다.

▶ 재주가 출중하고 문장이 좋으면 그 재주와 능력을 믿고 안일함에 빠져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중학교 때 책에서 '소년등과 부득호사'가 아닌 '소년등과 부득불 - 일찍 출세하는 것은 아무런 득이 없거나 불행이다'라는 이야기를 접했었던 것 같아 ( 사실 석부형제지세나 유고재능문장은 당시의 아빠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 )


아빠는 경험과 지혜가 부족했었기 때문에 저 3가지 불행이 의미하는 바와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사례에 대해서 잘 몰랐었고 너의 아빠가 되기 전 삶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도 한동안 이해를 하지 못했었단다.


그러다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하면서 아빠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아빠의 경험 안에서 조금은 이해가 가고 또 경험을 토대로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소년등과 부득호사에 대해서>


첫 번째, 아빠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의 첫 번째 사업을 하면서 당시에 3개 정도밖에 큰 방송국이 없던 시절에 뉴스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많은 신문에 이름이 오르는 감사한 경험을 했었어,


당시에 아빠와 같은 시기에 뉴스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신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에 아빠랑 그 이전부터 교류를 하던 삼촌이 있었는데 그 삼촌과 우정을 갖고 다지기도 전에 아빠와 그 삼촌을 기준으로 또래의 친구들 그룹이 형성이 되고는 그 삼촌과 아빠를 이간질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둘 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 좋은 친구이기보다는 라이벌 의식을 갖고 서로에게 아쉬운 말을 하는 사이로 교류를 해왔어 이 사례는 '아빠'도 '삼촌'도 교만하지 않았는데 서로가 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케이스니까 원래의 말 만으로는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아빠의 사례를 이야기해


< 소년등과 부득호사 + 유고재능문장에 대해서 >


두 번째, 교만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빠는 잘 몰랐었던 것 같아.


아빠는 대학이 아닌 사업이라는 진로를 선택하면서 고등학생 때 사업하면서 만났던 사람들로 인해 상처도 받고 사기도 당하고 빚도 지면서 사람에 대해서 쉬이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경계했었고, 따듯한 말을 잘하기보다는 경계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또 워낙 말을 빨리하고 엔지니어적인 특성상 사실(Fact)이나 정의(Define)만 말하고 이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 때문에 선배들한테 많이 혼났었어.


나태함을 제일 경계하던 아빠였기 때문에 혼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책과 영화를 보면서 말과 글로 아빠의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었는데 20대 초반에 몇몇 선배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아빠의 삶의 기준과 목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빠가 보였던 모습이 아빠의 나이 대비 문장력이 좋았었나 봐


한 번의 기회가 계기가 된 발표와 강의 자리가 두 번 세 번이 되고 전국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아빠의 이야기에 공감해 준 감사한 분들에 의해서 누군가의 롤모델이나 멘토라고 이야기되는 감사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는데. 게는 롤모델이나 멘토라고 이야기되는 감사한 경험이 아빠에게 주어지게 되었었는데


너무 예상하지 못하게 빠르게 일어난 변화 때문인지 아빠는 아빠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에 맞춰서 행동양식을 변화시키질 못하고 아빠가 오래전에 세워둔 기준인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에서 '약자에게 약하다'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까먹고 아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소화해내지 못했었어


아빠에게 정말 많은 사업 후배들이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고, 많은 기관들의 사업에서 멘토링을 하거나 사업 심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빠랑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던 사람들이 '멘토나 심사위원들이 좋은 말만 해주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안 해준다'라고 이야기했던 기억만을 갖고 악역을 자처하고 후배들이나 심사 대상자들에게 쓴소리를 도맡아 했었거든


사실 사업을 이끌어가기도 벅찼었는데 어린 시절 아빠가 많은 어른들과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작게나마 뭐라도 나누어 주는 것이 보답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었기에 그런 쓴소리를 도맡아 하는 것이 내가 내게 주어진 기회에 대해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마음이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는 행동도 그 마음이 누구에게나 보일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몇몇 사람들이 '그분들이 대표님을 잘 몰라서 그렇죠'라는 이야기에 노력을 잘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


아빠는 분명히 아빠의 시간을 내어주고 아빠의 생각과 사람 그리고 힘과 도움을 나누어주면서 살았는데 그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아빠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겼더라고


너를 낳기 전에는 '이럴  알았으면 차라리 아빠도 멘토링이나 심사 자리에서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할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네가 자라는 모습을 보니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질 , 내가 나의 진심을 먼저 전하고 그다음에 쓴소리를 할걸'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어 '교만은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이니까 아빠가 좀 더 조심하고 노력했어야지


<석부형제지세에 대하여>


세 번째, 아빠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엄마 아빠는 나를 어떻게 키웠어요'라는 질문을 했었단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


나의 생각과 기준대로 너의 생각과 행동을 판단하고 부모라는 이유로 널 조정한다면 네가 나를 뛰어넘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봐 그저 곁에서 지켜보고 지원해주며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고 혼란스러워 도움을 청할 때만 부모로서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키워왔다,

아이는 저마다 태어난 모습이 있단다 여건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네가 이렇게 성장한 것을 보면 너의 태어난 모습 그대로 잘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지 않니 그러니까 너도 네 아이를 네 생각과 기준대로 잘 키우려고 하지 말고 네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사는데 부모로서 자식이 필요할 때 의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렴 그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란다.


아빠는 자라면서 할아버지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업이 잘 안되어서 힘들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었는데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아빠에 대한 깊은 뜻을 갖고 있었던 걸 네가 태어나고 나서야 알았단다.


<함께 유연해지자>


네가 태어나고 엄마와 너를 양육하는 방법을 논의하면서 끊임없이 서로에게 노력하자고 강조하는 것이 '좀 더 유연해지자'라는 것이야


엄마와 아빠는 결혼하기 전 각자에 인생에서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하다가 사람들에 상처 받은 것으로 인해서 꽤 많은 시간 불행했고, 억울한 일을 겪었지만 가까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침묵했다는 이유로 꽤 많은 시간 힘들고 불행한 경험을 했었어


앞의 경험은 아빠가 엄마의 상처와 불행을 보듬어 주는 것으로, 뒤의 경험은 엄마가 아빠의 상처와 불행을 보듬어 주는 것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어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지금의 너의 부모가 될  수 있었단다.


엄마 아빠가 나이가 들어 엄마 아빠 때 말대로 소위 꼰대가 될 나이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너를 위해서 유연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게 종종 그런 모습 보이더라도 이해해주고 너는 엄마 아빠보다 많이 유연한 사람으로 자라주렴.


2021.04.24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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