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직업’이 아니예요.
나는 전과생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난 전과를 했다. 이과에서 문과로.
이쯤되면 궁금증이 질문이 되어 돌아온다. ‘수학이 싫었나요?’, ‘고등학교때에도 전과가 가능한가요?’
난 수학을 좋아했고, 고등학교때에도 전과가 가능하다. 이렇게만 답한다면 너무 재미가 없다. 그리고 사실 당시 난 엄청난 결단을 내렸던 것이었기에 이렇게만 답을 하긴 뭔가 아쉽다.
어떤 계기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꼭 확인이 필요한 검사라는 확신이 있었을 뿐이다.
‘색각 이상여부 검사’
미세하게 색깔의 차이가 있는 동그란 검사도구들을 짙은 녹색에서부터 짙은 빨강색까지 제한시간내에 순서대로 놓는 걸 보고 색각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였다. 다만 내겐 너무도 쉽지 않은 어려운 검사였다.
결과는 ‘약한 적록 색약’.
그러면 의사가 될 수 없는건가요?
대학병원 안과전문의 선생님께 물었고 선생님의 답은 뿌옇게 내 머릿속을 흐려놓았다.
“의사가 아예 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혈관을 식별해내며 수술을 해야하는 전문의는 되기 어려울 꺼예요.”
코흘리개 시절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얘길 하고 다녔고 그 그림이 좀 더 구체화되면서 생명과학자가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유기체 생명활동 매커니즘에 매혹되어 있었던 나는 ‘타인을 더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의미’까지 마음에 품고나선 의사가 되고 싶었다. 물론 가족을 비롯해서 주변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고자 그 직업을 꿈으로 여긴 부분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던 내게 ‘색약’이라는 진단은 ‘이제 그 길은 네 길이 아니야.’라는 ‘꿈 사망 선고’ 같았다. (물론 난 ‘죽지’ 않았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지만 말이다.)
평소 우유부단함을 단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디로 가버리고,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담임 선생님께 문과로 전과를 희망한다고 말씀드렸다. 신체적인 제약으로 온전히 꿈을 이룰 수 없다면 단호하게 다른 길을 가겠다는 생각의 발로였다. 정말 빠른 결정이었고 학교의 의사결정도 신속하게 이루어져 어느날 갑자기 난 ‘문과생’이 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명료한 진로목표가 있었는데 한순간에 그게 사라지고나니 ‘나의 꿈도 사라져버렸다.’ ‘이과에서 의대가 목표였으면 문과로 왔으니 법대로 가야하나?’ 하는 막역한 생각도 들어 책상 서랍에 ‘서울대 법대’라고 목표를 종이에 적어놓기도 했지만 그건 거짓 꿈임을 난 알고 있었다. 나름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마음 속에서 난 꿈을 잃은 채 방황했다.
여러분, 여러분 꿈이 뭐예요?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 학급에 일일 교사로 나선 내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었다.
‘선생님이요, 아이돌이요, 유튜버요.’ 아이들은 재잘재잘 자기 꿈을 외쳤다.
그래서 난 다시 물었다.
여러분, 다시 물어볼께요, 직업 말구요, 어떤 걸 하고 싶어요? 어떤 걸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꼭 물어야했다. 내 평생의 질문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전과생이 꿈에 대해 말하고 커리어를 상담해주는 인사담당자(HR manager)가 되었다. 삶은 아이러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뼈져린 고민의 시간을 겪은 사람이기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타자의 경력경로, 진로의 고민에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회사 구성원들의 커리어 상담을 하거나 후배, 지인들의 경력 고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나면 그 어떤 일을 했을 때보다 보람을 느낀다. 행복하다.
우연히 접하게 된 방송인 타일러 라쉬의 세바시 강연을 들으니 너무도 공감이 간다.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 물을 때 어른 잣대로 선택지를 주고 그 가운데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비단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나에게도 다시 묻는다.
네 꿈이 뭐니? 넌 무엇을 하고 싶니?
잠시 짬을 내어 타일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