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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끗하다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의 다른 이름

by 인생여행자 정연

순간 몸의 어느 한 지점에 번개가 가로지르고 가는 그 느낌을 안다.

그 직후 식은땀과 함께 찾아오는 후회와 아쉬움, 안타까움, 번민을 종종 경험한다.


삐끗하다
명사]
1. 맞추어 끼울 물건이 꼭 들어맞지 아니하고 어긋나다.
2. 잘못하여 일이 어긋나다. ‘비끗하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3. 팔이나 다리 따위가 접질리어 어긋 물리다. 또는 그렇게 하다.
- 표준국어대사전 중에서 -


‘평정심’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요가 동작을 하나씩 하나씩 한 지 어느덧 한 시간이 되었다.

이번 달 목표 요가 자세를 꼼꼼히 따라 하며 동작을 완성해가던 그 순간, 번개가 내 몸을 통과했다.

정확하게는 허리 왼쪽 편 가운데 깊숙한 지점을 날카로운 칼로 찌르듯이 지나갔다.


‘앗차!’ 통증도 통증인데, 그 순간 나를 사로잡은 건 ‘후회’였다.

‘무리해서 자세를 취한 걸까? 욕심을 부렸나 보다.’ ‘허리 조심해야 하는데. 예전에 다쳤던 걸 그새 잊어버렸니?’ 이어지는 자책.

부디 크게 다친 게 아니길 살짝 지나가는 통증이길 바라며 조심스레 허리를 펴고 일어나 서본다.


옆에선 선생님의 리드에 맞춰 목표 자세를 취해보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따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온다. ‘얼마나 다친 걸까? 한동안 제대로 못 움직이는 건 아닐까?’


긴 여행을 다녀오면서 한 달 동안 거의 제대로 요가 수련을 하지 않았다가 몸을 무리해서 움직여서 탈이 났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다그치고 탓했다. 불과 오 분 전 나를 지금의 내가 몰아세운다.

‘후회한다고 해서 하나도 바뀌는 건 없는데 왜 난 이러고 있을까?’


이런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는 동안 함께 요가 수련하고 있는 요가 친구들은 머리 서기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난 지금 매트 위에 앉기도 겁나는데 요가 친구들은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는 자세를 취한다.

순간 이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모두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주인공이 있고 그에게 핀 라이트가 비췬다.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어린아이 다루듯이 살살 내 몸을 움직여본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가 매트 위에 누워본다.

다리도 천천히 움직여보고 허리도 조금씩 움직여본다.


‘평정심’에 대해 이야기했던 시간, 그 짧은 사이 난 평정심을 잃었다.

통증으로 시작된 고통보다 몰아치는 후회와 두려움에 순간 넋이 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또 다른 내가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1. 욕심을 내서 요가 동작을 취하려고 했던 거니?

아니. 조금씩 조금씩 동작을 따라 했던 것뿐이야.

2. 예전에 다쳤던 곳 생각을 했어야지. 그걸 까먹고 허리에 무리가 가는 동작을 취했던 거야?

응, 맞아. 그걸 생각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요즘 안 아프다 보니까 까먹고 있었어. 사람은 잊기 마련이잖아.

3. 많이 다쳤으면 어떻게 할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이, 심하게 다친 것 같진 않아.

4. 당분간 일상 활동에 지장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할 거니? 한동안 요가도 못하는 거 아니야?

응, 일상생활에 좀 영향이 있을 테고 일주일 내 안 좋아지면 다음 주 요가 수업엔 못 올 수도 있겠지.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렇게 후회할 일도, 그렇게 두려워할 일도 아님을 알아차린다.


살면서 ‘삐끗할 때’가 종종 있지만, 삐끗한다는 건 다시 곧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그 안에 품고 있다는 걸 새삼 발견한다.


한 뼘 더 성장해간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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