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나(Dhrana)는 가까이 있더라
매트에 등을 대고 누운 자세에서 두 다리를 넓은 V자 모양으로 길게 뻗어낸다. 배꼽을 등 뒤 방향으로 힘껏 잡아당겨 복부에 힘을 가득 불어넣는다. 이 자세로 골반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를 몇 번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다리도 복부도 덜덜 떨려온다. ‘아, 더 이상 다리를 들고 있을 수 없다.’, ‘너무 힘들다, 힘들어.’ 그 생각과 함께 어느덧 내 두 손은 양쪽 허벅지 안쪽으로 달려가 진동하는 다리를 몸으로 당겨온다. 채 3분도 되지 않는 이 시간, 다라나(Dhrana)를 경험한다.
바른 자세로 앉아 호흡에 집중하며 명상하려고 했던 한 시간 동안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표류했던 조금 전의 나와는 달랐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지금, 여기’로 와있는 나를 발견한다.
집중력을 한데 모으는 마음, ‘응념’을 뜻하는 ‘다라나’는 Flow(몰입)과 맞닿아있는 개념인 것 같다. 외부의 상황과 내면의 생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온 마음이 다 가있는 상태.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오롯이 현존하는 나를 마주하는 경험.
요가의 아사나를 취하면서 몸을 적극적으로 쓸 때 마음도 따라 초점이 맞춰주는 경험을 하곤 한다. 마치 돋보기로 햇볕을 한데 모을 때 불을 붙일 수 있는 것처럼.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슬며시 엿보게 된다. 먼저 나의 감정과 생각을 풀어내다 보면 간결해진다. 뿐만 아니라 글을 써 내려가는 그 시간, 아사나를 해나갈 때처럼 ‘지금, 여기’로 나를 데려온다. 그런 경험이 쌓여가다 보면, 때론 흰 화면에 까만 글자를 채워가는 과정이 고행처럼 느껴지다가도 매혹적인 글쓰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나’를 써가다 보면 잘 정리하여 타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타자와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싶고 공감받고 싶어서다. 그런 경험들이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 내 안의 새로운 바람을 마주했다. 어떤 책 제목처럼 ‘나의 글이 이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