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뿌리와 우듬지 이야기

기반과 의도에 대하여

by 인생여행자 정연

요가 수련을 하고 나서, 공감 가는 책을 읽고 나서, 감명 깊은 영화를 보고 나서 가급적 난 말을 하지 않는다. 입을 여는 순간, 명료한 그 기분, 감정, 생각이 날아가 없어질 것만 같아서다. 그 대신 난 기록을 한다. 휘발성이 강한 음성 언어보다는 문자로 꾹꾹 가슴에 새겨 넣는다.




타다 아사나(산 자세)를 제대로 하고 있구나 느낄 때가 있다. 지면이랑 접하고 있는 발바닥에서 시작해서 발목, 정강이, 허벅지, 허리, 가슴, 어깨, 팔, 목, 머리, 정수리 끝까지 곧게 펴내는 그 느낌을 사랑한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산처럼 의연히 서있는 자세지만 그 안에 ‘정중동’을 품고 있음도 안다. 그 흔들림을 고요히 바라본다.

마찬가지 이유로, 브륵샤 아사나(나무 자세)도 좋아한다. 발바닥을 힘 있게 밀어내며 허리를, 가슴을, 팔을 더 길게 뻗어낼 때 난 나무가 된다. 올곧게 자란 한 그루의 소나무가 땅에 뿌리박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소나무인지, 소나무가 나인지 모를’ 호접지몽의 상태를 느낄 때 ‘지금, 여기’에 있음이 선명해진다.


그 소나무는 뿌리, 기둥, 가지, 잎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은 그 뿌리와, 가지 가운데 가장 끝에서 앞서가는 ‘우듬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기반.
명사) 기초가 되는 바탕. 또는 사물의 토대.


‘뿌리’는 ‘기반’이다. 지면에 맞닿아있는 내 몸의 일부. 그 기반 위로 몸의 다른 부분들을 돌탑 쌓듯이 쌓아간다. 그렇게 아사나는 완성된다.

처음 요가를 배워갈 때 아사나의 형상을 모방하려고 노력했다. ‘나도 선생님처럼 멋진 자세를 취해야지.’ 그 생각에 취해 마음만 앞서갔다. 선생님이 나무라면 멋지게 뻗어 나온 나뭇가지와 잎사귀에만 내 시선이 가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멋진 나무 모습은 바닥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기본자세 가운데에서도 기본인 타다 아사나를 할 때도 기반을 염두에 둔다. 그러면서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자세란 걸 알게 되었다. 매번 할 때마다 발바닥에서부터 전해오는 느낌도 다르다는 걸 경험한다.

매 순간 ‘기반’을 챙기는 마음, 요가가 내게 준 선물이다. 화려하고 멋진 것을 좇지 말고 내 삶의 토대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 바탕 위에 하루하루를 쌓아가려고 노력하는 힘을 준다.




우듬지.
명사) 나무의 꼭대기 줄기.
예문] 얼핏얼핏 고개를 들어 상수리나무의 우듬지 위로 뾰조록이 모습을 내민 산정을 올려다 보곤 하였다. <문순태, 타오르는 강>


제주 비자림을 처음 알게 된 건 십 년 전이었다. 그 이후로 여러 차례 비자림을 갔지만 작년 여름, 맨발 걷기(Earthing)를 했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자연 속에 폭 안긴 느낌이랄까? 그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기분에 한참이나 나를 살포시 넣어 두었다.


그날 하늘로 뻗어 올라간 비자나무 줄기 꼭대기 ‘우듬지’가 파아란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부끼는 바람에 자신의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한들한들 흔들릴 때에도 의연히 자신만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우듬지.


사실 ‘우듬지’라는 단어를 오늘 처음 접했다. 보긴 했어도 이름을 몰라서 ‘나뭇가지 끝’ 정도로만 생각하다가 이제야 부를 이름을 알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듬지를 통해 비유적으로, 요가 명상의 개념 가운데 하나를 좀 더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우듬지가 삶에서는 ‘의도’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제일 끝자락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나무의 몸통 제일 앞쪽에서 나뭇가지가 자라 갈 방향을 잡는 녀석이 바로 우듬지다. 배에 비유하자면 ‘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칠팔십 년 인생길을 관통하는 커다란 ‘의도’도 있을 것이고, 하루를 이끌어가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 무게와 크기와는 상관없이 결국 우리네 삶은 그 ‘의도’대로 커갈 것이다, 자라날 것이다. 그 진리를 알기에 나 역시 의도를 세우고 견지하려고 노력하는데 늘 쉽지가 않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좀 더 선명하게 의도를 마음에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푸르른 하늘을 향하는 듬직한 우듬지를 마음에 품고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이끌어가련다.



나는 나무다. 한 그루의 소나무일 수도 있고 비자나무일 수도 있다. 삶의 기반에 굳게 뿌리내리고, 생의 가치를 지향하는 우듬지에 힘을 실어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때론 바람에 가지가 흔들릴 수도 있고, 폭풍우에 가지가 꺾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할 것이다. 여전히 뿌리내릴 기반이 있고 매 순간 나를 이끌어갈 의도가 있기 때문에.



요가 수련할 때마다 ‘기반’에 대해 일깨워주신 부진샘, 체린샘, 타라샘, 보경샘, 세라샘, 혜진샘, 보람샘 고맙습니다. ‘우듬지’를 통해 ‘의도’를 이미지화할 수 있게 도와주신 오드리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 | 황정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