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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시대, 그 허상에 대하여

당신의 가용 년수는 얼마나 되나요?

by 인생여행자 정연

작년에 보험 상품을 새롭게 변경 가입을 하면서 보험 상품의 구성항목들을 상세히 볼 기회가 있었다. 그전에는 아버지가 가입하신 보험이나 사회 초년생 시절 주변 권유로 얼떨결에 가입한 보험이었던 탓에 보장 내역을 눈여겨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용어부터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때 곳곳에 쓰여있던 ‘백세까지 보장’이라는 표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백세라..’ 백세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를뿐더러 실감이 안 가는 숫자였다. 생각해보면 우리 할아버지가 아흔을 훌쩍 넘기신 연세로 정말 몇 년 뒤면 백세를 맞이하시게 되는데 ‘백세’라는 게 그리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내겐 육십 년이 남아있는 건가?


되돌아보면 사십 년이란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 대략 열 살까지는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스무 살까지는 마음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도 오롯이 입시를 향해 달려왔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느 정도’ 내 뜻대로 살았던 건 지난 이십 년인데 그마저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대로 지내왔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예스!’를 외치긴 어렵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때 지난 오 년은 그래도 내가 그리는 삶의 방향대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십 년 가운데 오 년이라.. 대략 10% 남짓의 시간만이 ‘내 뜻대로’ 살았구나. 그렇다면 앞으로의 육십 년이란 시간은 어떤가?




물론 이제 성인이 되었고 나름 성숙해졌고 삶의 방향도 명확히 찾았으니 예전보다는 ‘내 의지대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긴 하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몸은 점점 낡아지는 옷처럼, 하나둘 고장 나는 자동차처럼 되어가겠지.


작년에 읽었던 어떤 아티클에 따르면 육십 대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성질환 한 가지 이상을 지니게 되고 그 질병들과 남은 생을 함께 살아간다고 한다. 전 생애주기에 암이 발병할 확률은 삼분의 일이나 되고, 육십 대 후반부터는 급격히 노화가 가속화되어 칠십 대 이후로는 그간 살아온 생활습관을 자산으로 삼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비관적인 접근을 한 듯 보이지만 조금 더 시선을 위로 올려 한 세대, 두 세대를 먼저 살아가시는 주변분들을 살펴보면 그리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얼마 전 퇴근길에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데 ‘노인 데이케어센터’라는 글자가 볼드체로 새겨진 승합차 한 대를 봤다. 이십 대에서 오십 대까지 근무하는 사무실이라는 환경에서 벗어나 주변을 슬쩍 둘러보면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날도 그랬다.


부모님 세대는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노부모 봉양이란 과제에서 요양원의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 ‘노인 데이케어’. 나 역시 할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 몇 해를 요양원에서 보내셨을 때 이 과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만, ‘내가 저 차를 타고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데이케어센터 차량 (특정 브랜드와 관계없이 예시로 담았어요) c)다한다연구소


아파트 단지를 드나드는 수많은 노란색 셔틀에 타고 있는 아이들처럼, 노인이 되면 ‘노인들의 유치원’에 가야 하는구나, 그런 거구나.


노년에 집에 있을지, 요양원에 있을지, 병원에 있을지, 데이케어센터로 등하교를 할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점이 되면 지금처럼 내가 뜻하는 대로 내 정신과 육체를 쓸 수 없겠구나 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확실한 건 지금처럼 의욕을 갖고 내 삶을 계획하고 꾸려나갈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이삼십 년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죽음을 우리의 일상에서 소외시킴으로써 오늘날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했던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삶은 유한하고 내 뜻대로 온전히 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선명하게 알 때 비로소 ‘지금, 여기’를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믿는다. 두근두근하는 설렘으로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지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백세 시대, 단지 마케팅의 소재나 구호로 다루어져서도, 거기에 휘말려서도 안된다. 그 안의 이야기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교훈을 얻어 ‘지금, 여기’를 살아내야 한다. 백 년을 떠올리기 전에 일 년을, 한 달을, 바로 오늘 하루를 꼭꼭 씹어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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