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체격과 키
한국인은 자기 관리에 목숨을 거는 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식사는 항상 2% 부족하다 싶을 때 수저를 놓는다. 매일 새벽 아파트 같은 층에 있는 피트니스 룸에서 하루를 준비한다. 내가 사는 하와이 아이에아의 아파트 뒤로 10분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주립 공원이 나온다. 하이킹하기 딱 좋은 산으로 이루어진 공원이다. 쉬는 날이면, 산을 탄다. 솔향 피톤치드를 흡입하면서 몸과 마음을 관리한다. 가끔씩 '하나우마 베이'에 가서 스노클링도 한다. 사이클링도 틈만 나면 한다. 이 모든 게 골프 티칭프로로서의 기량유지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과하긴 하다.
동아시아 한, 중, 일 중에서 한국인이 체격도 제일 좋고, 키도 제일 크다.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제일 놀라는 일이 한국인의 키가 머리통 하나는 더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체격도 좋고, 키도 큰 이유는 단순하다. 잘 먹고, 많이 먹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인의 평균키가 일본인보다 작았지만, 지금은 넘어섰다. 그러나 한국인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다. 일본인의 키는 잃어버린 30년 이래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호주머니가 빈약해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이다. 키 작은 유전자에 식사량까지 빈약하니 그렇게 됐다.
중국인은 많이는 먹지만, 자기 관리가 약하다. 차 한잔이 자기 관리다. 서양 사람들은 이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제대로 구분한다고 한다. 중국인은 짧은 머리카락에 배 나온 아재 같고, 일본인은 왜소하며 스타일이 촌스럽고, 한국인은 큰 키와 흰 피부에 스타일이 간지 난다고 한다.
한국인은 대식가다. 빵, 피자는 식사로 여기지도 않는다. 식당에서 고기로 배를 채워도 마지막 화룡점정은 즉석 비빔밥이다. 모든 식사메뉴는 식당주인이 참기름과 김가루를 투하, 비벼주는 비빔밥으로 마무리된다. 먹고살만하니 가능한 일이지만, 사실 한국인은 대식가 DNA를 타고났다.
먹는 거에 진심인 한국인은 '먹방'이라는 인터넷 방송을 한류로 만들어 버렸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뇌 쾌락 중추를 노골적으로 자극한다. 먹방을 보고 있으면 행복, 쾌락 호르몬인 엔돌핀과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며, 자꾸 보고 싶은 중독에 빠진다. 과연 '푸드 포르노'라 불릴만하다. 한국인의 키가 훤칠하고, 먹는 것에 목숨 거는 건 대식가 DNA가 발현되서다. 한국인의 1인당 고기소비량은 세계 12위, 야채 1위, 과일 1위다.
일본의 스모계는 한때 하와이 출신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지금은 몽골 바이칼 호수 주변에 사는 부리야트 종족 출신들이 꽉 잡고 있다. 기골이 장대하다.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한국인과 가장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종족이 부리야트다. 그 옛날 동이족 한국인은 오랜 세월을 중앙아시아로부터 시작해서 몽골, 중국북방과 중원땅을 거쳐 한반도로 내려왔다.
우리 조상은 70%가 북방계, 30%가 남방계다. 중앙아시아로부터 시작된 북방계는 기골이 장대하고, 또 그런 만큼 많이 먹는다. 중국 한족의 원류는 남방계다. 유구한 세월 동안 북방계와 피가 섞여 오늘날의 한족이 됐다. 동이족보다 덩치가 왜소하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무열왕 김춘추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하루에 쌀 3말, 꿩 9마리를 먹었고, 백제를 멸망시킨 후엔 삼시세끼 대신 점심을 건너뛰고 조석만 챙겼다. 먹는 시간을 아껴 고구려 공략에 집중하려고 했다고 한다. 삼 시 두 끼인데 양은 더 늘어났다. 쌀 6말, 술 6말, 꿩 10마리다. 물론 과장이 좀 섞어있는 것 같다.
고대에 있어 사람의 신분과 능력은 먹는 걸로 판단한듯하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싸는 넘이 대빵이다. 그리고 혼자 그렇게 먹고, 마시지는 않았다. '대궁'이라 하여 왕이 먹을 만큼 먹고, 나머지는 신하들에게 한 상 차려주는 '음식의 신분위계질서'가 있었다. 그 관습은 우리 어릴 때도 있었다. 아버지와 손님이 먹고 나간 뒤, 남은 걸 상을 차려 식구들이 먹었다. 그걸 '대궁밥'이라 한다.
고려나 조선시대는 귀족이나 부유층은 삼시세끼, 일반백성은 점심은 건너뛰고 조석으로 바뀐다. 그래도 '대식가 DNA'는 도도히 흘러내려온다. 새참이 점심을 대신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새참'을 보면, 새참 먹는 그릇 크기가 엄청나다. 애 그릇도 어마무시하다. 애나 어른이나 엄청 먹어댔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에도 대식과 식탐을 질타하는 대목이 많다. "가난뱅이도 빚을 내서라도 실컷 먹어치우고, 관직에 있는 자들은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술을 마신다." "중국사람의 밥그릇은 찻 잔만 하고, 일본사람은 김치 종지만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사람 하루치 분량을 한 끼에 먹어치운다." "오키나와까지 소문났다. 조선인들은 그 큰 쇠숟가락으로 밥을 먹어치우니, 조선이 거덜 날까 걱정스럽다."
서양인 선교사나 여행가도 입을 딱 벌린다. "조선인은 중국인보다 2배, 일본인보다 3배를 먹는다." "서, 너명 앉으면, 복숭아 25개가 순식간에 없어진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때맞춰 식사를 하는데, 조선인은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댄다." "조선인의 식탐은 귀천과 빈부와 관계없다." "환갑을 훨씬 넘긴 노인도 식욕이 안 당긴다면서 5그릇을 해치운다." "조선인은 곱창과 생선을 무지 좋아하는데 상에 오르는 일이 없다. 보자마자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중년의 한국남자가 아침밥에 집착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밥에 예민하다. 다 밥심을 중요시하던 DNA 때문이다. 명나라로 사신 갔던 어느 조선인 관료얘기는 유명하다. 밥자리를 약속한 중국 대신이 조정일로 많이 늦어지자, 그 집을 방문했던 조선 사신은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집에서 처음에는 차와 과일을 내왔다. 예민해진 손님을 눈치채고 떡과 주전부리를 대령했다. 계속 배고파하는 것 같아 돼지요리와 닭요리까지 내왔다. 중국 대신이 집에 안 돌아오자, 조선사신은 결국, 배고파 식사를 해야겠다며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중국 대신은 아뿔싸했다고 한다. 조선인은 밥을 먹지 않으면, 먹은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미리 와이프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조선의 최장수왕 영조는 하루 3끼만 먹었다. 식단도 고기에 야채를 곁들여 건강을 챙겼다. 말이 소식이지, 지금 기준으로는 대식가다. 그래도 며느리 (사도세자 빈)는 시아버지가 먹는 게 부실해서 병약할까 걱정했다. 원래 조선의 왕들은 하루 6끼를 먹었다. 고기반찬이 주다. 야채 빼고! 일어나자마자 죽 같은 가벼운 식사, 아침식사, 점심, 새참, 저녁식사, 야참까지 살뜰히 챙겨 먹었다.
한국인에게 먹는다는 건 중요한 문화양식이다. '먹다'와 '밥'은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우리 생활 속에 먹는다는 의미는 실로 다양하게 쓰인다. "나이 먹는다, 겁먹는다, 욕먹는다, 먹튀, 뇌물 먹인다, 챔피언 먹었어, 친구 먹었다, 거시기 따먹었다..."
밥은 더 심하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밥값 좀 해라, 밥은 먹고 다니냐,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 밥줄 떨어질라, 철밥통, 밥숟가락 하나 얹은 것뿐인데, 짬밥수가 얼만데, 밥벌이..."
우리에겐 사는 게 먹는 거고, 먹는 게 사는 거라 할만하다.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어느새 나도 딸아이와 통화할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밥 먹었어?"다. 구한말 프랑스에 돌아다니던 그림엽서를 보면, 밥그릇과 국그릇 크기가 장난 아니다. "조선, 많이 잘 먹으라!"라는 글귀가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면, 밥그릇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고구려 때의 밥그릇은 지금의 대여섯 배는 족히 된다. 탄수화물 섭취 비중을 줄이려다 보니, 지금의 밥그릇은 작아졌다. 그러나 지금도 식당에 가면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냉면이 담겨 나온다. '대식가 DNA'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애나 어른이나 참 왜소하다. 유전자로 보면, 일본은 원주민 (폴리네시안)과 한반도를 거쳐 건너간 동이족이 세운 나라다. 한반도의 가야인, 백제인, 신라인, 대륙의 부여인, 고구려인이 건너가 원주민과 피를 섞었다. 나중에는 발해인도 일본으로 물 건너갔다. 일본의 전 총리 '아베' 조상도 발해인이었다. 실제로 아베 아버지가 가사도우미에게 "자신의 조상은 발해에서 이주해 왔다, 조선인이다"라고 종종 말했다 한다. 일본의 잡지 '주간 아사히'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일본인은 동이족과 원주민의 피가 섞여있는지라 그런대로 왜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육식을 금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야 육식이 허용됐다. 고기대신 생선만 섭취하다 보니, 왜소해졌다.
오늘날 한국인의 체격과 키가 전형적인 아시안의 그것이 아닌 데는 대식가 DNA가 큰 몫을 했다. 일제 시기의 굶주림으로 대식가 유전자가 그 후 100년 동안 주춤했지만, 1990년대부터 다시 대식가 유전자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많이 먹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체격과 키를 갖춘 한국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