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by 단소니

251030

여름이면 서늘하니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운 곳, 절밥과 향냄새가 좋아 자주 놀러 간 절 법당 구석에서 예불을 기다리다 폭신한 방석 두 갠가 깔고 누워 법구경을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무서운 법당 보살님은 매섭게 혼내고, 스님들은 춥지 않냐고 묻거나 별 신경을 안 썼다. 늘 읽다 졸아서 결말을 모르지만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관도 없고 삼라만상 욕심은 덧없다고 하는 법구경의 난해한 세계관이 제법 마음에 든다. 국가에 천재지변이나 인재가 발생했을 때 큰 절은 그들의 영을 위로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지나다가 보면 들어가서 짧게 기도하고, 온 김에 오색찬란 연등과 탱화 좀 구경하고. 미움에 취약한 내가 화를 감당하지 못해 몸이 아플 때, 스님은 '가엽지 않니'라고 한마디 했다. 그 가여움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상대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무엇이 가엽냐고 쏘아붙였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은 안다. 미워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을 어여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이 살린 건 나였다. 미움에 에너지를 써 깜깜한 감옥에 갇히지 않게 하려는 스님의 사랑이었음을. 잿불에 번진 빛 같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251031

머리칼 사이로 차가운 소름이 돋아나고 깨끗한 피가 발밑까지 씻겨 내려가는, 첫눈에 들어온 그림이 마음에 들면, 아니 이건 마음에 들었다는 수준을 벗어나 선명한 필름처럼 머릿속에 각인되면 기분 좋은 소름이 끼친다. 전시관 동선을 뒤죽박죽 돌아다니며 그림과 또 마주치면 아까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경탄이 파도처럼 밀려와. 세상에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내 하찮은 말 몇 마디에는 담기 어려운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바람결에 팽팽하게 당겨진 돛, 봄날에 바닥을 뒹구는 지난겨울의 흔적, 곧 녹아 여름으로 흐를, 녹진하게 밝아오는 11월의 새벽, 밤을 새운 이의 까실한 손바닥과 마른세수. 계절이 타고 넘어간 창문이 주는 감격을 설명하기에 내 주절거림은 너무 하찮아서, 좋은 이유를 묘사하면 납작해지는 것 같아 말보다 더 너절한 글을 쓴다. 글이나 그림 혹은 연기 경험 같은 수단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몰입의 순간, 뿌리처럼 흡수한 세계는 수단을 통해 외부로 표현된다. 이 모퉁이를 돌면 하늘까지 닿는 캔버스에 오색찬란 원색의 그림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집어삼켜 천천히 소화하는.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