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1
항간에 떠돌길 귓가에 종소리가 울리기도 심장이 귀까지 쿵쿵 뛰거나 정지화면에 그 사람만 선명한 채색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30대에도 첫눈에 반하는 순간이 있느냐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본 적 있냐는 말을 오리고기를 먹다 들었는데 너는 무슨 그런 말을 부추를 집다 말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 심부전이라고 오리고기보다 팍팍하게 대꾸한다. '지하철에 계단이 많으면 누구보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열이 오르더라'와 같은 종말론적 두근거림을 지껄이니 한동안은 또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보다 남에게 관심도 많고 기운이 넘치던 어린 시절에도 타인으로 인해 심장이 크게 뛰어본 경험이 없다. 내 관심의 척도는 설렘보다는 명확한 존재감인데, 그저 그런 시시한 두루미 중에 고고한 학이 존재만으로 각인될 때, 인지해야 하는 사람으로 네임택이 붙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영원히 뚝딱거리는 바보 같은 모습만 보여준다. 두근거리는 찬란한 감정이 아닌, 반했을 때는 늘 '아, 망했다'는 문장만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반짝이는 종소리와 새소리, 3개월 분량의 설렘과 긴장감 흔해빠진 유일한, 로맨스.
251112
예민하게 삼십여 년을 살면 불편해도 이 삶에 익숙해진다. 강제로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의 예민함은 유별나고, 까탈스러우며 무던하지 못한 일반 사회에 편입되기 어려운 튀어나온 못 같은 성정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늘 충만한 예민함을 누리지만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조차 예민하게 싫고 고결한 내 인성이 형질로 인해 평가절하 받는 것도 마뜩잖기에, 다수와 있으면 최대한 예민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 또 노력한다. 크고 복잡한 목소리나 소리는 일정 시간 버티고 나면 나에게 모두 소음일 뿐, 뇌 없이 상식 이하의 소리를 내뱉는 건 그냥 소음. 그에 반해 창공을 개나리꽃처럼 수놓는 갓 낳은 달걀 같은 소리도 있어서, 스트레스 100정도 받을지언정 세계와 사람을 놓지 않는다. 나의 알량한 슈퍼에고와 기질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거나 타인에게 맞추라고 요청하는 일은 없다. 양손에 쥔 모래알만큼 무수히 많은 타인으로 채워진 세상임을 알기에, 다른 튀어나온 못 들을 가엽게 여기며 남몰래 거들거나 편협한 내 기준이 단단해지지 않도록 끝없이 의심하며 두들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