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05
게를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발라먹는 손가락 끝을 한참 본 적이 있다. 연붉은 살점이 껍데기에서 발려 나와 고르고 얌전히 식기에 누워있다가 입으로 쏙 들어가는 광경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맛있는 걸 좋아해도 먹는 과정에 공수가 들면 귀찮아서 안 먹어버리는 나는 무언가 손으로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하는 행위, 뜨개질이나 보석 십자수와 게 살 바르기, 새우 발라 먹기와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새우쯤이야 새우깡이라 생각하고 껍질 통째로 먹지만 게는 잇몸이 소중해서 껍질까지 먹을 수 없다. 손으로 하는 행위 중 귀찮지 않은 건 글쓰기와 그림뿐. 사람이 너무 바쁘면 도리어 귀찮다는 표현을 쓴다고 옛적 심리학 교수님이 말했다. 실제로 많은 일과 지나치게 다양한 감정이 몰리면 지독히도 귀찮아져서 사사로운 것들은 그냥 쳐내버리곤 한다. 한입에 많은 영양소를 삼킬 수 있는 김밥과 비빔밥처럼 세상일이 간편하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성을 들일 무언가, 거대한 킹크랩을 바르는 차분하고 손끝이 야무진 어른이 되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251106
서경이는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뭘 물어보면 항상 기억이 안 난다고 해서 처음 몇 번은 귀찮은가 싶다가도 정말 기억 속에 그것이 없다는 걸 깨달아서 사사로운 것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녀의 머릿속은 옛 기억이 끼어들 틈이 없이 실로 깔끔한데, 아티클 천 개와 방탈출, 살인사건 다큐나 장난감 그리고 순심이만 있다. 언니 따라 텐션이 높진 않지만, 다른 것은 상당히 낙천적이고 단순해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그녀의 머리맡에서 생사를 확인한 일도 여러 번이다. 한평생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는 머리가 좋은 건 타고났고, 플러스로 공부에 전념하기 너무 좋은 형질까지 가지고 있다. 주변에 관심이 없고 기억력이 나쁘다. 논문 백 장은 써도 주변 사람을 다정하니 챙기거나 입에 발린 멘트 하나를 못 써서 나에게 들고 오는 친구. 과거의 망령에 붙잡히지 않고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서경이를 볼 때마다 그녀의 앞길에 서성이는 건 순심이 하나뿐이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한다. 7년의 유학 생활 중간 잠시 한국에 들어온 그녀가 집밥 양껏 먹고 쿨쿨 자다가 먼 창공으로 도약했으면. 서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