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단소니

251109

고통은 달콤하며 중독성이 있다. 고통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많은 것들을 회피할 수 있고 열이 난 이마를 짚는 서늘한 손 같은 안쓰러운 애정도 마음껏 누린다. 고통에 빠진 사람이 눈물 그렁그렁하게 있으면 그 눈물이 떨어질까 누구도 섣불리 매서운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를 위한 애정일 수도,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단순한 마음일 수도. 우물에 빠진 이에게 우물을 왜 선택했냐고 묻는 천진한 물음은 이기적이며, 검은 우물에 중독돼 무릎 높이까지밖에 안 오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는 누가 건져 올린다 한들 또다시 기어들어 간다. 인생은 스스로의 몫이라, 우물에 중독이 되든 양지에서 뛰노는 강아지든 서로를 이해 못 하는 것은 매한가지. 아픈데 적극적으로 처지하지 않는 이는 고통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거나 아직 견딜 만하거나, 무기로 쓰고 있거나 혹은 그냥 게으르다. 고통을 뭉개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면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얼마간의 마음을 쏟았든 난 이제 온갖 상처와 트라우마를 따뜻하게 끌어안을 생각이 없다. 말은 얼마든지 난로같이 할 수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겠냐고.


251110

30년간 근근이 운영되었던 나한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조간신문 귀퉁이에서 읽은 흐림은 짧은 한숨을 내뱉는다. 그녀는 재직 중임에도 구직 신문이나 가로수를 열심히 읽었고, 무료로 배포하는 정보 전달용 주간지 또한 시험공부하듯 읽어치웠다. 눈앞에 샴푸가 있으면 성분 표를 의미 없이 외웠고 계면 활성제가 얼마나 들었는지 읽다가 놀라곤 했다. 바르고 정갈한 글자를 보면 흐리게 쓴 편지의 글자 나열들이 떠올랐다. 십오 년 전 나한 극장은 여전히 파리가 날렸다. 어둑한 내부에 매표소 직원은 자주 졸아 손님이 유리 칸을 두들기는 것이 일상, 팝콘과 콜라는 반입이 불가했으며 걸리는 영화는 10명이 보면 8명이 졸다 나오는 것들로만 채워졌다. 이례적으로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2월의 마지막쯤 흐림은 엔딩 크래딧을 보며 안 존 순간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옆자리의 은검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인기척으로 엔딩 크래딧까지 눈에 담는다. 극장을 나와 은계천 골목까지 들어와 어둔 눈을 발로 걷어차거나 불투명한 담배 연기가 나란히 겨울 밤하늘로 날아가면 은검은 말없이 재를 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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