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Apr 12. 2016

씨앗이 꽃피울 때까지

"서울에서 대전 다녀온 격이에요"


음악 하는 동생이 레슨을 하러 김포에 갔다- 집으로 컴백하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고 했다.

뒷 일정이 딱히 없었기에 30분을 지옥철에서 끼여있는 대신, 

여유롭게 돌고 도는 버스를 탔더니 대전을 다녀오고도 남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처. 30분 바짝 힘들고 집에서 푹 쉬는 게 좋지. 두 시간 반을..?"

"그냥 버스에서 생각도 하고 잠도 자고 그렇게 놀다가 들어가는 거죠"


눈물을그치는타이밍, 이애경 저자, 양보 손글씨



이불 밖은 위험해 

라는 정신을 부여잡고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나는 엄청난 집순이다.

그런 내가 먼 곳에 가있다면 그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다.

가령 외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출발과 달리 돌아올 때는 다소 여유가 있다.

그럴 때면 조금 돌더라도 버스가, 타고 싶다.

창밖으로 바뀐 계절의 풍경도 보고, 바람 냄새도 맡고, 햇살도 느끼고-

그렇게 여유를 부려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30분쯤 지나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길이 막히는 것도 아닌데 갈증이 난다.

그냥 지하철 탈걸. 시간을 길에 버리고 있단 생각이 들면서 조급해진다.

충분히 여유를 부려도 되는 때에도 

급한 성격, 비효율적인 것을 못 견뎌하는 나는 '빨리', '목적'을 달성하기에 바쁘다.


설령 그 목적이 집에 들어가 씻고 이불속에 눕는 '휴식'을 위한 것이어도 과정에 여유로움이 없다 보니 되려 몸을 고되게 만드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될 때도 있다. 그럴 땐 진짜 뭐하는건가, 싶어 헛 웃음이 나온다>_<


행동에 딱히 목적이 없어도, 바로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의미 없다 섣불리 판단해버리면 안 되는데... 급한 성질머리가 먼저 결론을 내려버린 탓에 얼마나 많은 씨앗이 꽃을 피는 모습을 보지 못한 걸까?



1cm+, 김은주 저자, 양보 손글씨


이런저런 생각 속에 대화를 나눈 동생과 나는 잠시 서로의 성격을 부러워했다.

가장 좋은 건 빠릿빠릿함이 필요할 때 빠릿빠릿하고, 여유가 필요할 때 여유로운 것일 테지만-

이마저도 성숙의 과정일 테니 기다리면 열매가 맺혀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함 속의 무서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