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하게 비가 오고 있었다.
힘겹게 걸어 단골 커피집 문을 열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실거야, 하며 걸어왔지만
우린 늘 그렇듯 차가운 커피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기분이 어때요?”
나는 지난 금요일에 마지막 출근을 했고 그녀는 월요일에 마지막 출근이 예정되어 있는,
오늘은 주일이었다.
“음 별로. 다른건 없어. 아직 실감이 안나서 그런가?
하지만 마지막 출근을 한 주 앞두고는 좀 멍했어.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
“맞아요. 뇌 주름이 싹 펴진듯 멍하기만 해요. 레슨 자리도 미리 알아봐야지 했는데
생각만 하고 있었지 뭐에요. 불안함 마저 오래가지 못해요. 멍해져서 ㅋㅋㅋㅋㅋ”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며 그녀와 나는 크덕크덕 웃었다.
실제로 나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회사의 권고 사직을 쿨하게 받아 들였다.
회사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막연히 지점이 폐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퇴사를 10일 전에 알려준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 당혹감마저도 길게 가지 않았다.
물론 당일엔 마음이 심란해 저녁을 걸렀지만, 10일 뒤에 그만두나 30일 뒤에 그만 두나, 그럴봐엔 빨리 그만 나가는게 더 낫다는 결론에 빠르게 도달했다. 저녁은 걸렀지만 잠은 푹 잘 잤다.
퇴사 통보 다음 날 아침 나는 웃으며 출근했고 여느 날과 같이 일했으며 앞서 전한대로 화기애애한 송별회로 마지막을 맺었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무덤덤해져버린걸까?”
“언니 저는 지금이 좋아요. 좀... 무덤덤해진 지금이요. 이십대 때는 모든 것에 너무 뜨거웠어요.”
20대 후반, 회사를 그만두고 한참 방황하던 때가 생각났다.
꿈을 찾아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두었으면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해 몹시도 불안했던 그 시절.
회사를 그만둔 자신의 선택을 자책하기도 하고, 동기들과 비교해가며 스스로를 못살게 굴던,
울기도 많이 울었던, 늦은 이십대 사춘기를 앓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어느사이 그 방황은 멈췄다. 그리고 이렇게 또 일을 하게 되었고
다시 함께 일하자는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인정 받기도 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어느 곳에서든 적응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살아졌다.
그러니 이번에도 살아가질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자신을 믿지 못해 불안해 하던 시절을 벗어나고 있나보다.
우리가 무덤덤해진 건 삶에 대한 여유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쌓여 그런게 아닐까?
걱정과 불안에 대해서는 이런 자세로 다소 무덤덤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러다가 또 다시 여느날 처럼 어느 자리에 가서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연스럽게 아이스 음료를 주문한 오늘 처럼, 자연스럽게.
그러니 당분간은 실업급여에 기대어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무덤덤함을 불안해하지 않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