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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20. 2020

쳇바퀴 같이 돌아가는 시간 속에

나의 아저씨(tvN, 2018)

운 좋게 긴 휴가 기간을 받았다. 회사 일이 많아 맨 마지막에 휴가를 가게 됐는데 때마침 임시공휴일이 지정되면서 열흘을 쉬었다. 물론 앞, 뒤로 주말 4일이 포함된 날짜지만 그래도 긴 기간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많은 일이 떠올랐다. 북쉐어링 도서 총균쇠도 읽어야 했고 사이코지만 괜찮아 마지막 회 대사 정리도 해야지. 그리고 글 모으기. 올 해는 양치기 소녀가 되지 않기 위해 기필코 출간을 하자! 가장 많은 비중을 글 다듬는 시간으로 잡았다. 하지만 대사 정리 빼고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열흘이 지나가버렸다.


집에만 있었음에도 지구 반대편 시차로 지내느냐 비몽사몽 한 상태로 출근을 했다.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는데 휴가를 떠나기 전 자리를 바꾼 까닭인지, 너무 오래 쉬어 그런지 어딘가 낯설었다. 열흘 전 나와 동기화를 시키는 과정에선 두통이 왔다. 그제야 휴가가 끝났음이 실감됐다.


물론 이런 낯섦도 동기화도 오래가지 않았다. 정신없이 몰려오는 일들에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퇴근을 했다. 피곤함이 몰려오긴 했지만 운동은 가야지, 집에 와서 운동복을 갈아입는데.... 휴가 기간 동안 운동을 가지 않은 게 생각났다. 딱히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닌데 운동을 가지 않았다니. 반복적인 일에 강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나였는데... 머릿속에서 삭제된 건  운동만이 아니었다. 출근 전 하던 아침 기도도 출근을 안 했다고 하지 않았다. 점심 먹고 챙겨 먹던 영양제도 들쑥날쑥한 식사 시간에 많이 건네 뛰었고 이 외에도 생활에 빈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휴가 기간 루틴을 무너트린 건 (아마도) 드라마 <나의 아저씨> 때문일 테다. 이 인생 드라마를 아직 보지 않았다는 언니에게 전도하기 위해 며칠의 새벽을 몽땅 털었다. (덕분에 낮밤이 바뀌고 스텝이 하나씩 꼬여갔다는 핑계를 댄다.) 개인적으로 다섯 번도 넘게 본 드라마인데 처음 보는 듯 마음에 와 닿는 대사가 있었다.


20년을 가까이 구조기술사로 일하면서 동훈이 깨우친 인생의 진리를 말하던 장면 속 대사다. 모든 건물은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해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한다. 그래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 인생도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다.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동훈은 이 진리를 바닷바람 맞으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던 중 깨달은 게 아니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지겨운 일상 속에서 깨우쳤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tvn>


동훈의 내력을 듣는데 또 다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하루아침에 아픈 엄마는 사라졌을 때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도 손은 또 움직여 빨래를 개고 돼지주물럭을 만들던 동백이의 쳇바퀴가.


어쩌면 그녀는 그렇게 굴러가는 시간에 자신을 맡겨 흘러 보냈을지 모른다. 손이 익은대로 머리가 아닌 몸이 움직여 보낸 시간이다. 하지만 일상의 루틴은 동백이에게도 숨은 내력이었다. 덕분에 돌아온 엄마와 까불이를 잡고 일상을 지켜낸다.


“사람의 삶에 마지막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부적 환경이나 상황 등 그들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다.” #당신이옳다


결국 마지막까지 나를 만드는 건 잠깐 스쳐가는 휴가의 시간이 아니라 지겹다고 느껴지는 매일이었다.   


오늘은 외근을 가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지만, 아무튼 출근이라는 어제와 닮은 아침을 맞이했다. 이후 시간은 아마도 퇴근만을 기다리며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평범한 하루가 되겠지만 그 안에서 나는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다.


다람쥐 쳇바퀴 같다 불평했던 평소의 시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아저씨 때문에 무너진 루틴이 다시 또 잡아지는 새로운 경험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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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생 드라마라는 말이 아깝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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