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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an 21. 2021

좋아하면  울리고 싶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울리고 싶은 등장인물이 보인다.


작년에 종영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SBS, 2020)> 속 준영이를 볼 때도 그랬고, 요즘 푹 빠져있는 드라마 <런 온(jtbc,2021)> 선겸도 그런 주인공 중 하나다. 누군가를 울리고 싶다는 게... 좀 이상한 취향을 가진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준영과 선겸은 자신보다 상대가 우선인, 배려심 많은 인물이다.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상대가 난처하지 않았는지, 불쾌하지 않았는지 먼저 살피는 두 인물을 보면서 다정하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은 뒤로 제쳐 두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더욱더 울리고 싶어졌다. 미소 짓는 건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할 수 있지만, 눈물은 편안함 이상의 안전함을 느낄 때 비로소 가능하니까. 그래서 준영이가 엄마 앞에서 힘들다며, 그동안 참아온 서러움과 지침을 쏟아 낼 때 드디어 그에게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러니까 내가 저들을 울리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 웹툰 제목처럼 <좋아하면 울리는> 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우는 장면에 대해 말하다 보니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2019)>이 생각난다. 죽은 남자 친구를 떠나보내지 못해 환영을 보는 은정은 동생의 권유로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은정에게 언제 울었는지 물었고,  은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 했다. 나 역시 언제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울음은 재작년 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며칠째 속이 메식거리고 소화가 안되서 찾은 동네 병원에서 의사는 내 얼굴과 눈에서까지 황달기가 보인다며 간염을 의심했다. 병원의 배려로 3시간 만에 피검사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보통' 수치를 몇백배 뛰어넘는 결과에 부랴부랴 큰 병원 진료를 받고 그 길로 입원을 했다. 그 것도 1인실로. 다음 날 다인실로 옮겨준다고 했다. 아빠는 병원이 돈 벌려는 꿍꿍이라 했고. 아무튼 몸을 움직이기 힘든 것도 아니었고 과한 걱정이 부담되어 가족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한 그런 아침이었는데 알씨한 소독약 냄새가 맴도는 병원에서 혼자 밤을 맞이하고 있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비싼 입원비를 증명이라도 하듯 병실에서는 한강이 보였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은 이내 곧 병원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비췄다. 나는 무릎을 꿇고 불안한 마음을 토해내듯 기도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눈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 순간 마법이 풀리듯, 꿈에서 깨듯 나는 눈을 떴다. 아무도 없는 일인실인데도 나는 누가 봤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안한 마음도, 기도도 눈물과 함께 쏙 들어갔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잘 울지 않는다. 혼자 볼 때면 눈물이 나오긴만 그렇다고 준영이 처럼 마음 놓고 펑펑 울지 못 한다. 훌쩍이다 이내 삼키는 식이다. 타인의 이야기에 동해서 울 때에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당사자도 아닌데 내가 나서서 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게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렇듯 모든 감정을 꽉 쥐고 있었던 것 같다. 손 틈 사이로 흐를까 봐 불안해하면서. 그러면 단단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게 애당초 단단하게 뭉쳐지지 않는 성질의 모래 가루 같은거라면 강하게 움켜쥔다고 단단해질까. 자유롭고 부드러운 성질의 그것은 그냥 그대로 흐르면 흐르게 두는게 나은 편이 아닐까.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던 중 눈물이 터진 은정이 나처럼 눈치를 봤다. 죄송하다며 눈물을 삼키려는 그녀에게 의사는 "괜찮아요. 문제없어요."라고 말했다. 우는 건 문제가 아니다. 울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안 느끼한 산문집>에서 강이슬 저자가 두근거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갑자기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에서 이도우 작가가 울기 위해 "엉엉" 소리를 내봤다던 대목이 생각났다. 그런 날이 있었던 뒤 작가는 영화 <그랑블루>를 보다 한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고, 그 장면을 구간 반복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기 위해 입으로 엉엉 소리를 내보았던 그 날의 연습이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갑자기 우는 법을 잊어버린 듯 하다.  아무튼 <그랑블루>는 이도우 작가를 울린 영화지만 그의 인생 영화는 아니고 그날 하루의 영화는 되었다고 하는 걸 보면, 핑계 없이는 울 수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이도우 저, 위즈덤하우스

  눈물 버튼을 꾹 눌러줄 드라마를 생각해 봤다.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sbs,2016)>을 보면서 많이 울었었는데... 하도 많이 봐서 다시 볼 때 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꼭 울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속에 가득 찬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쏟아 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웃어서 풀어질 성질의 녀석이 아닌 듯싶다.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마저도 무감하게 다가오는 걸 보니 말이다. 아직 울지 않은 기선겸을 울릴 때가 아니라, 나를 좀 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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