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이켜보면, 나의 대학 생활은 용감했던 날의 연속이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군대를 다녀온 뒤에 당시에 취업이 잘되는 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했고, 당시 나는 글 쓰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글을 써보고 싶어서, 어느 날 갑자기 학과장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 학과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교수님께서는 흔쾌히 학과 인쇄기 지원과 1:1 첨삭의 기회를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동아리에서 각종 행사를 도맡아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서양철학사 책을 강독하기도 했었고, 다른 한 번은 문학 이론과 비평에 관하여 이야기했었고, 다른 날에는 선후배들과 함께 운동했었고, 다른 날에는 동아리 방에서 소설이나 철학책을 읽었다. 당시 내 나름대로는 재미있었고 알찼지만, 대학 위치가 지방이다 보니 지리적으로 빈약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나는 항상 서울을 동경해 왔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쿠알라룸푸르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쿠알라룸푸르가 말레이시아의 수도이고 물가도 한국보다 저렴해서 좋았으나, 이곳 또한 지리적으로 빈약한 점도 많았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편도 아니다 보니 언어적으로도 불편했고, 동남아 특유의 생활방식은 한국인인 나에게는 불편했다.
불편을 감수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대학생 시절, 말레이시아 직장인 시절 동경해 온 서울에서 거의 두 달 정도 생활할 기회가 생겼다. 서울을 처음 온 건 아니었지만,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잘 보여주는 강남, 직간접적으로 희비의 상징을 가진 한강, 다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동대문, 새로움을 가장 먼저 즐길 수 있는 성수동, 사색하기 좋은 석촌호수, 이 모든 서울의 풍경들은 촌놈인 나에게 신기한 경관이었다.
한창 신기한 경관을 보고 즐기던 중 어느 날, 나는 건대 입구에서 중국 음식을 먹은 다음 건국 대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그날의 태양은 강했고 몸에 기운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서울 소재의 대학교로 가보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다.―건국대학교로 가는 길은 마치 5분 전 일인 것 마냥 아직도 나에게 선명했다. 건대입구 3번 출구로 나와서 건국대학교 병원으로 들어가서 맞은편 출구로 나가서 쭉 직진하면 건국대학교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한― 상허도서관 우측으로 쭉 가게 되면, 건대 호수가 나왔다.
그날 건국대학교로 갔을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았었다. 나는 건대 호수를 구경하려고 했는데, 호수 옆으로 쭉 늘어선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딘가에 입장하려 했다. 그러고 나서 앞으로 쭉 지나갔을 때, 교통 통제 표지판과 무대, 무대 위에는 학교 밴드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음향 세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장렬한 햇빛을 견딜 수 없어 근처 그늘막의 벤치로 이동했다. 벤치로 앉아 쉬고 있을 즘 여성 보컬의 인사와 곡 소개가 있었다. 첫 번째 곡은 ‘한로로 – 입춘’이었다. 한로로라는 가수는 알고 있었지만,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어떤 노래인지 잘 몰랐는데, 여학우의 상당한 노래 실력 덕분에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곡은 ‘브로큰 발렌타인 – 알루미늄’이었다. 알루미늄을 불렀을 때는 남성 보컬이 올라와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불렀을 무렵 나는 내 중학교 때를 떠올렸다. 중학교 때 나는 밴드부였고, 밴드부 때 기타를 잡고 있었던 친구가 꼭 한 번 다 같이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라면서 우리에게 들려준 적 있었다.―결국에는, 내가 밴드부를 나가게 되면서 다 같이 연주하지는 못했지만.
건국대의 한 밴드부 덕에, 나는 나의 지난 시절을 떠올리고 싶어 대학생 때 동아리에서 만들었던 문집 파일을 읽어보았다. 그 문집에는 나와 함께 동아리를 했던 학우들의 글과 소감이 있었다. 소감 중 한 학우는 “이 문집에 글을 실었던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면 청춘이 이미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적어 놓았다.
그 문장을 본 순간 나는 지금 내가 서울에서 굳이 생활하고 있는 이유와 굳이 서울 소재의 대학을 가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소진된 나의 청춘을 다시 충족시키고, 지난 시절 해소하지 못했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욕심들은 충족시킬 수 없었다.―내가 욕망하는 것은 그곳에 있었지만, 다른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 잠깐 머무르는 나라는 찰나의 존재는 그 욕망에서 소외된 것이다. 그러니 나의 청춘과 욕망은 욕심이 되어 해결될 수 없었다.
나의 자기기만은 한 학우의 한 문장을 통해서 벗어나게 됐고,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었지만,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건데, 굳이 내가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었다.―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인생은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하니까.
흔히, 문학에서 교양소설을 보고 '자기 파악의 여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농부 집안의 자식은 농부가 되면 그만이지만, 주어진 인생의 진로를 거부하고, 다른 가능성을 찾으며 방황의 길에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그녀는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 모색하는 백지상태에 이른다. 그러면서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렇게 그/그녀는 농부의 길로 돌아오고 여행은 끝이 난다.
교양소설에 관해 이야기한 이유는 내가 서울에서 방황하고 좌절하고 힘들어한 다음, 내가 다시 내 고향으로 돌아가서 해외 취업을 하고 난 뒤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모험 소설처럼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여기서 살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간에 지금 행복하면,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행복하면 장땡 아닌가?
건국대학교에서 들은 ‘한로로 – 입춘’에서, 입춘(立春)은 봄의 시작을 알린다. 이때 보통 입춘대길(立春大吉)이란 종이를 문 앞에 붙인다. 입춘대길의 의미처럼, 봄이 온다는 소식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봄이 오면 더 이상 춥지도 덥지도 않고, 벚꽃도 볼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너무 고고하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고, 그저 반가운 느낌의 입춘, 그래서 나는 입춘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좋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대책 없는 즐거움이라 말할 수 있지만, 다른 대책이 많이 있기에 지금 대책 없이 서울에서 놀고 있는 나는 누가 뭐라 해도 행복하다. 내가 만약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는 서울에 오지 않을 정도로, 후회 없이 너무 즐겁게 살고 있다.―나의 청춘은 이미 소진돼 사라졌지만, 나는 지금 청춘(靑春)이 아닌 다른 춘(春)의 형태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