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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Mar 03. 2022

이상의 '시제1호'를 나름 파헤쳐보자!

이상(李箱, 1910~1937)의 <오감도 “시제1호”> 해석

이상(李箱, 1910~1937)

이상(李箱, 1910~1937)의 <오감도 시제1”>를 읽고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러케뿐이모혓소.(다른事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길은뚤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     



<시제1호>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인물은 ‘아해(兒孩)’(이하 아이로 서술함)다. ‘아이’가 처음으로 질주하는 도로는 ‘막다른 골목’을 전제한다. 제1, 2연의 13명의 아이들은 무서운 상태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시제1호> 속 아이들의 무서움은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함에 있지만, 무서움에 또 다른 원인은 ‘막다른 골목(막달은골목)’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은 끝이 존재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하는 상황에서 도망치려 질주해도 결국에는 끝이 있는 공간 때문에 도망이 무의미해진다. ‘막다른 골목’은 아이들에게 ‘절망감’을 줬다.

막다른 공간과 그 안에서 질주해 도망치지 못하는 아이들로 ‘이상’은 ‘당대 우리나라 사회와 사람들의 절망감과 공포감’을 표현했다.

<시제1호>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시며, 한국인에게 일제강점기는 자신과 자신 영역이 계속 침략당하고, 수탈당하는 때, 즉 ‘타자에 의한 상실’의 기간이었다. 이러한 상실 속에서 자아분열이 발생할 때 선택지가 주어진다. 자신의 운명•숙명을 따르고 자살•체념하든지 아니면 이를 이겨 내고 끝끝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지.

운명•숙명을 따르고 자살•체념하는 모습은 전근대적인 모습이다. 왜냐하면, 문제 해결하지 않고 ‘아 나는 어쩔 수 없어’라는 마음을 갖고 자살•체념을 해 근대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상’의 <시제1호>는 근대성을 보여줬다.

<시제1호>의 제4연을 보면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라고 서술했다. 이는 아이들이 공포와 절망에 휩싸여있음에도 자신들이 공포의 피해•가해자임을 인식한 구절이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공포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고, 이를 알아차린 아이들은 서로를 받아드렸다. 자신들이 ‘막다른 골목’에 ‘무서운 존재’와 함께 있다고 해서 자살•체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받아들이며 공포감을 없애는 방도를 택했다.

<시제1호>에서 표면적인 근대의 키워드는 ‘도로(道路)’이다. (국권피탈 이후 일제가 곧 도로법령을 만들고, 행정 ·산업 ·군사적 목적에서 우마차 ·자동차 등 차륜 통행을 위주로 하는 근대적 도로를 축조한 것이 현재 국도망(國道網)의 대부분이다. 정부수립 후 10여 년 간이나 과거 일제강점기 때 제정한 도로법을 그대로 시행해오다가, 1963년 2월 26일 비로소 신도로법(新道路法)을 제정 공포하였다.)이처럼 <시제1호>는 ‘도로 위에 있는 아이들’을 통해 근대적인 요소를 보여줬다.

마지막 연에서 ‘길이 뻥 뚫린 도로에서 그들이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무서움을 유발하는 존재는 이제 없다. 그리고 전지적 시점에서 아이들을 막지 않고, 길이 뻥 뚫린 도로를 주고, ‘질주 아니하여도 좋음’을 서술했다. 이는 질주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상황 즉 아이들에게 ‘자유’를 준 상황이다. 만약 아직도 공포를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끝이 없는 도로에서 질주하면 되고, 아니라면 질주할 필요 없이 뻥 뚫린 도로에서 쉬고있어도 된다.

끝없는 도로에 있는 아이들은 ‘막혀있는 존재’가 아닌 ‘자유로운 존재’가 됐다. 이 구절에서 ‘이상’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젠가 일제의 막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시제1호>에서 ‘이상’은 괄호 사용과 띄어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용은 시의 형태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른 시에서도 수학 기호를 포함하고, 문법을 무시하는 기존의 문학적 체계를 뒤엎는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이상’은 분과학문(건축, 수학)을 문학에 들고 왔고, 이성과 지성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객관화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점은 “‘이상’의 문학은 근대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는 근대성을 뛰어넘는 ‘탈근대성’의 모습도 보여줬다. 왜냐하면, ‘이상’의 시 <날개>의 경우 그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어떤 일상적 현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파편화되고 물화된 현대인의 소외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상’이 총독부 건축가로 일하며 식민지 권력의 허구성을 깨달았고, 자본적•세속적인 것을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시제1호>에서도 아이들에게 무언가 추구(追求)하지 않고, 자유에 맡겨놓는다.

이러한 모습은 ‘이상’이 획일화•규율화의 자본•식민지적 시선을 넘어서는 “탈근대적(postmodernism)” 모습을 보여줬다. 왜냐하면, 일본이 적립해 놓은 원리, 형식에 대한 거부 및 반작용(反作用)으로 일어난 예술 경향을 보여줬다.

근대의 대표적인 결과물은 ‘분류화(분과화)’이다. ‘이상’은 다른 분과학문을 자신의 문학에 적용해 근대성의 면모를 보였다. 그리고 띄어쓰기를 쓰지 않고 시의 형식을 파괴한 점과 획일화•규율화 된 자본적•식민지적 시선을 넘어서는 “탈근대적” 모습도 보여줬다.

국문학과 교수님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쓰지도 못했을 글이다. -C교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상’의 문학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함이 많이 남아있는 문학이다.

-이상 너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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