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선택에 대한 한 청년의 성찰'을 읽고

마르크스의 고등학교 졸업 논문

by Prosh 사회인

우리가 흔히 마르크스를 떠올린다면, '공산주의자', '자본주의 혐오자'라고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산주의 때가 묻지 않은 고등학생 시절 마르크스의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은 마르크스가 김나지움에서 졸업할 때 쓴 소논문으로 알려져 있는 <직업선택에 대한 한 청년의 성찰>1)은, '어떤 직업을 가져야 되는가?'라는 이야기를 토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다.


우선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먼저 옮기겠다:


"자연은 동물이 움직일 수 있는 활동의 권역을 결정했고, 동물은 그 범위 안에서 평화롭게 움직이며, 그것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그 너머에 다른 무엇이 있음을 눈치채지도 못한다. 인간 역시 인류와 그 자신을 고상하게 만드는 일반적인 목적을 신에게 부여받았다. 그러나 신은 인간이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은 주지 않았기에 인간이 스스로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즉, 인간이 그 자신과 사회를 가장 고양시킬 수 있는 사회 가운데서의 자신의 적합한 위치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 이 선택은 다른 피조물들은 가지지 못한 인간만의 거대한 특권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의 평생의 삶을 망치고, 모든 계획을 어그러뜨리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는 행위다. 그러므로, 이 선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자기 경력을 막 시작하는, 그리고 이 가장 중차대한 문제를 우연에 맡기지 않고자 하는 청년에게 있어 그야말로 첫 번째 임무라 할 것이다."


"원대한 것은 번쩍인다. 그 번쩍임은 야망을 불러일으키고, 야망은 쉬이 영감, 또는 우리가 영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야망이라는 마귀의 유혹에 빠진 사람은 더 이상 이성의 제지를 받지 못하니, 충동적 본능이 제안하는 대로 뛰어들게 된다. 이렇게 된 인간은 더 이상 삶에 있어서 자기 위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우연과 환상에 의해 그 위치를 결정받게 된다. 또한 우리는 가장 빛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위치를 잡으라고 요구받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기나긴 세월동안 그 위치를 유지하며, 지치지도 않고, 열심이 꺾이지도 않고, 열정이 식지도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곧 소망이 충족되지 아니하고 관념은 불만족스러움을 발견하여, 신을 거역하고 인류를 욕하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성은 여기서 상담사가 되어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험에 의해서도, 심오한 관찰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지 않으며, 감성에 기만당하고 환상에 눈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 앞서 인생의 행로를 여행하고 운명의 혹독함을 경험해 본 우리의 부모――우리의 심장이 우리에게 재고하라고 말해 준다."


"냉정한 태도로 직업을 검토하여 그 직업으로 인하여 짊어지게 될 부담을 인식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알게 된 후에도 열정이 지속된다면, 그때에야 그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열정이 우리를 기만하지도 않을 것이며, 성급함이 우리를 끌고가지도 않을 것이다."


"직업에 맞지 않는 신체적 조건 하에서는 오랫동안 일할 수 없고 일하면서 행복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약할지라도 정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를 위해 복리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만약 재능이 없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가치롭게 수행할 수 없다. 곧 스스로의 무능을 수치스럽게 깨닫고, 자신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사명을 수행할 수 없는 쓸모없는 피조물이라고 되뇌이게 될 것이다. 이로써 나타날 가장 자연스러운 결과는 자기혐오다."


"가치있다 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과 노력에 더 높은 고상함을 부여하여 그 사람을 불굴의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군중의 존경을 받고 군중 위에 서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는, 우리가 예속된 도구가 아니라 자기 권역에서 독립적인 존재로서 행위할 수 있게 해 주는 직업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 직업, 설사 비난받을 만하다 하더라도 겉보기에만 그런 직업, 최선의 존재가 고상한 자부심을 가지고 기꺼이 그 길을 따를 수 있는 직업만이 가치를 보장할 수 있다. 이것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직업이야말로, 항상 지고의 직업은 아닐 수 있으나, 항상 가장 선호되어야 할 직업이다. 그러나 종사자에게 가치를 보장해줄 수 없는 직업은 그 종사하는 사람을 퇴락시키고, 그 사람은 여러 관념들에 기반한 짐더미에 확실하게 깔리고 나서야 그 관념들이 허위였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최우선 지침은 인류 전체의 복리와 우리 자신의 완벽함이다. (...) 인간의 본질이란 너무나도 구성적인(constituted) 것이라, 인간은 오로지 동포 인간들의 완벽함을 위해, 선을 위해 노력할 때에만 자신의 완벽함을 달성할 수 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런 사람은 유명한 학자, 위대한 현자, 탁월한 시인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완벽하고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은 될 수 없다."


"역사는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여 자신을 고상하게 만든 사람들을 가장 위대하다고 부른다. 경험은 가장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갈채한다. 종교⟦기독교⟧는 그 자체가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상적인 존재를 모방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누가 감히 이러한 판단들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거의 모든 노력을 인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삶의 위치를 선택한다면, 아무리 무거운 부담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직업에서의 희생은 만인을 이익을 위한 희생으로 되기 때문이다."



1. 마르크스는 신은 인간에게 윤택하게 살라는 임무를 주었지만, 정작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인간은 자급자족 해야한다. 자급자족 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사회 가운데서의 자신의 적합한 위치를 선택"해야 된다. 이러한 선택은 "다른 피조물들은 가지지 못한 인간만의 거대한 특권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의 평생의 삶을 망치고, 모든 계획을 어그러뜨리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생존과 사회의 적합한 위치를 찾아야되는 인간에게 가장 첫 번째로 주어진 임무가 바로 '직업선택'이다. 직업 선택을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야망을 갖게 되지만, 되려 이 야망이 마귀에 유혹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혹에 빠진 사람은 이성의 제지를 무시하게 되고, 이렇게 된 인간은 "더 이상 삶에 있어서 자기 위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우연과 환상에 의해 그 위치를 결정받게 된다."


2. 이 상황에서 미성숙한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우리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심장이자 "인생의 행로를 여행하고 운명의 혹독함을 경험해 본" 자신의 부모와 의논해보면서 재고할 수 밖에 없다. 냉정한 태도를 통해 해당 직업에 대한 위험성과 자기희생을 예측 및 검토한 이후에도 그것을 하고 싶다는 열정이 지속된다면, 그 직업을 선택해야 된다. 반대로 이러한 작업을 거치지 않고 나에게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을 경우, "오랫동안 일할 수 없고 일하면서 행복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약할지라도 정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를 위해 복리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일에 대한, 본인의 무능과 조직에서 쓸모 없음을 깨닫고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된다.


3. 맑스에게 '가치 있음'이란, 사람이 고양될 때를 의미한다. 그 고양됨은 피동적인 직업을 가진 존재가 아닌 능동적인 직업을 가진 존재일 때, 즉 "예속된 도구가 아니라 자기 권역에서 독립적인 존재로서 행위할 수 있게 해 주는 직업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그리고 "설사 비난받을 만하다 하더라도 겉보기에만 그런 직업, 최선의 존재가 고상한 자부심을 가지고 기꺼이 그 길을 따를 수 있는 직업만이 가치를 보장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직업이야 말로 개인에게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불가능한 직업이라면, 그 사람을 피동적인 존재로 만들 것이고, 결국에는 사람을 퇴화시킬 것이다.


4. 마르크스는 역사적, 종교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직업의 선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류 전체의 복리와 우리 자신의 완벽함"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동포 인간들의 완벽함을 위해, 선을 위해 노력할 때에만 자신의 완벽함을 달성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자신만을 위해 일한다면, 훌륭한 사람은 될 수 있으나 위대한 인간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5. 우리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갖게 된다면, 그 직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당한/부당한 희생과 부담이 우리를 굴종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직업에서의 희생은 만인을 이익을 위한 희생으로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잘살 것인가?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근현대 사회로 오면서 '직업선택'은 '어떻게 잘살 것인가?'에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대기업, 로펌, 회계사 사무소, 의사 등 기본적으로 돈 많이 주는 직업을 선택하면, 물질적으로는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능력이 된다면, 이러한 직업을 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얼마 안가 퇴사한다는 걸 애진작 예측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직업을 원한 적이 한번도 없고, 그저 돈을 많이 번다는 "환상에 눈이 가려지"게 되고, 나는 그 일을 가치있게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하지 못했/않았다.


카를 마르크스의 고등학교 시절 선생인 '요한 후고 비텐바흐'는 마르크스의 소논문을 보고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꽤 잘 썼다. 이 소논문은 사유도 풍부하고, 서술도 체계가 잘 잡혀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 학생은 자꾸 설명을 해야 할 때 그림같은(picturesque) 표현으로 나타내려 하는 버릇이 있는데, 여기서도 그 특유의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밑줄 친 구절들은 요구되는 명확성과 정의(定義, definiteness)가 부족하고, 일부 표현들은 엄밀함이 부족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락 전체가 그렇다."



필자의 말

지인에게 듣기로는 1940년대까지 김나지움의 커리큘럼을 보면, 이미 중고생들 상대로 라틴어 희랍어를 가르쳐서 플루타르코스나 플라톤 원서, 신학 원서 강독 등의 교육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과 뿐만아니라 당연히 이과 계열도 매우 난이도가 높았다고 한다.

마르크스도 김나지움 출신이었는데, 본 글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그가 고3 때 졸업 논문으로 쓴 글이다. 나는 고 3때 뭘 했는가...


마지막으로, 유신론자였던 마르크스의 글... 이건 좀 귀하다.



1) 출처 : https://crimson-moon-night.blogspot.com/2023/03/reflexiones-iuvenis-de-electione-professionis.html?m=1

인용문은 싹다 위 사이트에서 인용했으며, 볼드 처리는 필자가 임의로 처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