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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sh 직장인 Oct 06. 2023

김현우 작가의 <히네니הִנֵּֽנִי>를 읽고

- 서평


 김현우 작가(이하 '김'이라 표기함)의 <히네니>는 '히브리어 수업을 듣는 최근의 자신'과 '20대에 연애 경험한 과거의 자신', 즉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병합시킨 글이다.

“꼬박 1년간 매주 화요일 저녁은 정동길을 걷고 히브리어를 읽는 시간이었다.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한 때로부터 수년 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은 자신이 비교적 최근까지 히브리어 공부를 하는 자신의 일상에서 과거를 돌이켜 본다. 그렇게 몇 년 전 봄이 오기 전 한 통의 전화는 헤어진 연인 S였다.

 어느 날 S는 자살 시도를 했고, 그녀가 응급실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 생각난 사람은 김이었다. S는 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붙잡을 길 없는 말”, 즉 그에게 희망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김은 그녀가 이제 ‘타인’이 됐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이 연애를 자신의 입으로 온전히 끝냈다.     

 김은 S와 처음 서울월드컵경기장 스카이박스에서 만났다. 김은 연기자로, S는 관객으로 있었다.―심지어 그녀는 김이 했던 공연에 자주 왔다고 서술했다.― 연극이 끝난 뒤 김은 운 좋게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그녀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S의 핸드폰 번호를 얻게 됐고 며칠 뒤에 그녀와 약속을 잡고 만났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을 통해 만난 그녀와 마실 것으로 고른 와인은 칠레산 이슬라 네그라였다. 이슬라 네그라를 마시며 나는 두 번째 만난 그녀의 이름이 S라는 것, 카페 매니저로 일하고 있으며 커피에 관해 잘 안다는 것, 내 예상보다 어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는 2층에 있어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외부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2층 실내에서 술을 마시다가 1층 실외에서 키스를 하고 다시 2층 실내로 와서 곧장 사귀자는 이야기를 꺼낼 정도로 나 또한 어렸다. 거절의 답이 돌아왔다.”

  이후 약속을 잡은 김은 그녀와 함께 바에서 술을 한잔 마신다. 마시면서 그녀의 이름, 직업, 관심사, 나이를 알게 됐다. 김은 술을 적잖이 마셔서 그런지 자신감이 생겨서 사고(?)를 쳐버리고, 그때의 자신의 방식이 서툴렀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다음 문단에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적지 않고,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와 ‘아브라함’이 썼던 용어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창세기, 혹은 버레쉬트 그의 22장에서 신은 아브라함을 부르고, 아브라함은 이렇게 응답한다. “히네니” “예, 여기 있습니다.”로 옮겨지는 말이나 직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를 보소서.’ 그의 대답을 들은 신은 명령한다. …”

 독자로서는 이러한 글의 진행이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김의 연애 이야기가 쭉 이어나가야 하는데, 그렇지않고 갑자기 성경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성경 이야기를 한 뒤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시 성경 이야기를 하고,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글을 끝낸다.

 중간중간마다 김의 성경 이야기에서, 우리는 김이 단순히 자신의 연애 이야기만 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김은 성경을 통해 말한 것(현재)과 연애 이야기(과거)의 병합으로 그가 깨달은 것을 말해준다.

 김이 성경을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을 헤어질 때까지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때까지 대상과의 사랑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S와의 사랑은 그러한 사랑이 될 수 없었다. 더불어 김이 본인의 사랑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사랑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S는 김에게 자신이 사진관에서 일하니 한번 놀러 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알아볼 때까지 지켜볼 의사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과거의 S가 나를 그리 대했을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내린 사랑에 S는 부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 문단에서 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서술을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사용해 자신의 미래를 담담히 서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선 사진관에 우연처럼 S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돌아서서 나갈 필요까지는 없겠지.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고, 카메라 렌즈 앞에 자리를 잡아야겠지. 그녀는 사진 몇 장을 찍다가 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우리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이 오고 말겠지. 그러면 나는, 대뜸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말겠지―

 ―그래도, 이제는 혹시,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느냐고.

 찰칵.

 역시, 아직은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이다."

  김은 “역시, 아직은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이다.”라고 말했지만, 만약 이 질문이 본인에게 한 질문이라면, 이는 거짓이다. 왜냐하면 그는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녀에게 던진 질문이라면, 이는 그가 말한 대로 보이지 않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에 대한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의 <히네니>는 첫 문단서부터 “나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연애는 그것으로 온전히 끝이 났다.”라고 독자들에게 넌지시 답을 던져줬다. 하지만 독자들은 소재의 흥미진진함에 빠져 김이 던진 답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이 문장을 떠올린 독자는 스크롤을 올려 다시 첫 문장을 보게 된다.

 나는 김의 이러한 ‘넌지시 던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글은 얼마나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여운의 순도가 달라진다. 즉 ―기억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억을 어느 정도 한다는 가정에서― 김이 넌지시 던진 단어, 문장, 문단들은 그때부터 ‘넌지시’가 아닌 필연적으로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가슴에 와닿는 글이 돼 있다.

 이것이 바로 <히네니>의 힘이자, 김현우의 필력이다.



작가의 말

 여태까지 <히네니הִנֵּֽנִי>를 4번 정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감회가 다르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조잡한 서평이 김현우 작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히네니הִנֵּֽנִי> 출처 : https://brunch.co.kr/@hyunwooki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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