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샘 Mar 24. 2020

나는 왜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을까

행복에 죄책감을 느꼈던 나

"어깨 아프지 않으세요?"


독서모임에서 한 회원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가족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붙이신다.


"동생에게 책임감을 느끼시네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너무나도 정확한 말. 얼핏 알아차리고는 있었지만 쉽게 흘려보냈던 말이었다. 맞다.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뿐만이 아니라 동생에게까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동이 안타까웠다. 동시에  그런 동생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 아이가 독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는 동생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엄연히 그 아이는 성인이다. 러니 동생이 독립을 원한다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고, 그래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이를 나보다 잘 아는 동생은 언니인 내가 자신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종종 나의 의견을 묻거나 부모님과 한 집에 사는 어려움을 토로할 뿐이었다. 그러니  내가 해주어야 하는 것은 조언을 구할 때나 격려가 필요할 때 그에 맞게 말 한마디 던져주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나는 동생이 요구하지도 않은 걱정을 혼자 사서 하고 있었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답답해하며. 그리고 동생이 독립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나에게 있는 것처럼 책임감을 느끼며 말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제대로 독립을 하게  거라고 기대했었다. 새로운 가족을 꾸리면 그 가족과의 삶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독립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결혼이 원가족으로부터의 내 완전한 독립을 정당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완전한 독립이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분리된 것을 의미했다. 더 이상 나에 대한 부모님의 부정적인 시선, 평가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는 것과 내가 짊어진 정신적인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는, 그런 분리의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독립하지 못했다. 매일 부모님과 통화를 했고, 부모님의 돈 걱정, 동생 걱정에 정신적 부담을 짊어져야 할 책임을 느꼈다. 20대에는 방황만 하며 허송세월 보내다 교대에 입학했고, 교대를 졸업하고는 바로 결혼을 했다.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자마자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는 즉, 부모님이나 동생경제적 부담을 나눠가진 적이 없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이에 많은 부담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는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통화를 할 때마다 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누구네 딸은 돈 얼마를 주고 시집갔다더라

누구네 아들은 매달 용돈을 얼마 준다더라

이번에 이자 내야 하는데 걱정이다.

네 동생 시집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네가 좀 알아봐라

이번에 마이너스라 카드값 내기도 힘들었는데 네 동생이 돈 줬다. 네 동생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이번에도 네 동생이 이자 내는 거 도와줬는데 오늘은 화를 내더라. 언니는 하고 싶은 공부해서 잘 됐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속상해서 울었다.


나는 매번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그렇지."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하곤 했다.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잔뜩 듣고 전화를 끊고 나면 엄마의 말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건 나에게 무거운 죄책감으로 남아 며칠이고, 몇 달이고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내가 분노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건 나의 남편 덕분이었다.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유하는 순간들이 놀라울 정도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부모님과 동생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엄마와 통화를 하고 나면 무너졌다. 나는 또다시 죄책감을 느꼈고,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나 혼자 행복하다는 생각'에 내가 죄인인양 느껴졌다. 우리를 위해 돈을 쓰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은 경치를 보러 갈 때마저도 그랬다. 이런 죄책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해졌고, 급기야 부모님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엄마, 아빠, 동생은 차가 없어서 어딜 편하게 이동하기도 힘들 텐데.

내가 가까이 살았으면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했을 텐데.


결혼 전, 그렇게 남편에게 '독립'을 부르짖었던 난데 정작 내가 독립을 하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매여 있었다. 행복을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고, 독립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는 자주 괴로워했다.

  

내가 그런 상태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죄책감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마음에 바위만한 돌덩이 하나 얹어놓은 것처럼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가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엄마처럼 키우지 않을 거라고 곧잘 얘기하던 나에게 찾아와 준 아이. 나는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스스로 심각한 결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 바람대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독립'


아이가 행복하려면, 그리고 아이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내가 행복하려면 '잘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엄마인 나부터 부모님, 동생과 독립되어야만 했다. 그때부터 나는 독립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투쟁의 방법을 이용했다. 부모님이 나를 놓아주어야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쁜 년이 되었고, 독립은 커녕 내 죄책감만 커졌다. 조곤조곤 얘기도 해보고, 화도 내어봤다가 일방적으로 연락도 끊어봤는데 다 소용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얼마나 작아지고 좌절했던가.


치열하게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며 깨닫게 된 것은 결코 내가 부모님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독립'의 의미부터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부모님을 걱정하는 건 마땅한 일이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끼기 때문이다. 피를 나눈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부모님의 삶과 내 삶은, 그리고 동생의 삶은 각자의 몫이고 책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삶 속에 뛰어들어가 좌지우지할 필요도, 그럴 자격도 없다. 자유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살 수는 없기에, 각자의 경계는 지켜줘야 하기에 나는 내 생각부터 뜯어고치기로 했다. 지금 나는 그 과정 중에 있다.

 

어제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된 날이었다. 엄마는 얼마 안 된다며 30만원을 주고 갔다. 예전 같았으면 이 돈을 받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엄마도 힘들 텐데 이렇게 돈을 받아도 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잠도 잘 못 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고,  할 수 있으니 한 것이다.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자.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나는 이렇게 독립하는 중이다. 행복을 느끼면 그 행복을 방해하지 않고 오롯이 느끼려 한다. 그 노력 덕분인지  요 근래는 3분의 2 이상 성공적으로 행복의 감정을 온전히 누린다.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마음이 그리 무겁지 않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며 느끼는 행복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동생의 독립도 그저 응원할 뿐이다. 잘 해낼 거라고 그저 믿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의 돌덩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돌멩이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고, 조각조각 부서졌을 뿐이다. 그래도 지금 이 정도로도 나는 만족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잘 독립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며 살 것이고, 지금의 나의 변화가 전해질 것이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전 06화 아이를 보는데 문득 눈물이 나오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