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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Aug 09. 2020

배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와 용기, 엄마라는 이름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근 10년 가까이 지나온 내 삶은 나답게 살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내는 시간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삶이 힘드신 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번번이 묵살당하곤 했다. 어린 시절을 거쳐 학창 시절을 겪어내며 나는 점점 자신을 표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항상 순응하고 침묵했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괴로웠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기본적인 욕구이기에 나는 살 방법을 기어코 만들어냈다. 결국, 차선책으로 타인의 애정에 기대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언제나 그랬다. 나는 관계가 어려웠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주 착한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반응을 해주어야 했기에 집중해야 했고,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할지 고심하느라 피곤해졌다. 내가 말을 해야 할 때에는 온갖 검열을 거치고 거쳐 내뱉느라 에너지가 소진되곤 했다. 항상 상대의 눈치를 살폈고,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연애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당한 요구에도 대항하지 못하고 순응했으며 그와 동시에 상처 입은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긴장으로 굳은 몸으로 사람과 만나고 세상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은 괴로웠다. 하지만 숨기려 애썼다. 그래도 자연히 위축되어 굽어지는 어깨는 숨길 수가 없었다. 

내 행복은 오롯이 상대의 손에 달린 것이었다.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순 없었다. 내 감정 상하는 건 내버려 두면서까지 상대 기분을 맞춰주려 애썼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그 탓에 나는 내 생각을 죽이고, 감정을 없애며 살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이란 걸 할 수도 없게 되었고, 감정도 무뎌졌다. 하루하루 충동적으로 사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외부에서 소진된 에너지를 생각하며 더 고갈시킬 순 없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현재나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한계에 달했다. 무기력증에 시달렸고, 모든 관계에 염증을 느꼈다. 타인과의 관계는 유지하려 그토록 노력했건만 나와의 관계가 이미 끊어진 채였기에 결국 놓아버리고 말았다. 

집과 PC방에서만 생활하며 시간을 죽이고, 내 인생을 없앴다. 게임과 술. 이 둘이면 내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생활이 길어질수록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집 밖으로 나갈 때면 누가 볼세라 고개도 들지 못했다. 낯선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도 불안했지만 행여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더 무서웠다. PC방이나 집 안으로 들어와야만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오랜 방황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일 줄 알았던 그 시기에, 외부와 단절하고 나와의 관계도 끊어내고 살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님 탓이라며 원망하고 분노하며 복수라도 하듯.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았다. 숨이 꺽꺽 막혀도 죽을 용기는 없어 그렇게 살았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숨어 살았다. 현실을 떠올리기 싫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선택할 필요도 만들지 않으려 했다. 내 삶을 책임지지 못했던 나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간신히 숨만 쉬며 살던 삶은 스물여덟 살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죽어야 하나 살아야 하나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했는데 죽기는 싫었다. 이대로 살다 죽어야 하는 내가 불쌍했고 억울했다. 그래서 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선택하는 삶을 살자 생각했다. 잘 살아보자, 결심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번뜩 용기가 생겼다. 생각할 용기, 선택할 용기를 살리며 살아보자 싶었다. 

살기 위해선 내 삶을 책임져야만 했다. 단 한 번 사는 삶, 자유롭게 살다 가야 했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으로부터. 그리고 나를 옭아맨 나의 내면 비판자로부터.

이날 이후로 나는 내가 자유롭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집중했다. 자유란 곧 '나답게 사는 것'이었다. 자유를 찾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떠올리는 과정을 거치며 나는 어떤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떨리는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알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내가 자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언저리에는 다다랐다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어렵다. 복잡하다. 좀처럼 간결해지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면 되는지, 이것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도돌이표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자유를 내 인생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나를 잃고 살았던 때의, 죽어있던 내 모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선택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래서 고민하는 지금이 행복하다. 이 행복을 놓치며 살고 싶진 않다. 비록 주춤거리고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기도 하고, 내 속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해 답답할지라도 말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은 더욱 강해졌다. 내 아이는 자신을 잃고 사는 경험을 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고 산다면 언제든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자기답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러려면 나부터 나답게 살아야 했다. 부모인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하는데 아이가 자기답게 살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니까.  아이의 무한한 믿음이 담긴 눈을 보면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 졌다. 내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감사일기를 쓰고, 긍정 확언을 쓰고, 필사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이다.


어린아이가 이것저것 해보다 점차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처럼. 지금 나는 여러 가지를 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해 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복잡다단한 삶을 거쳐내야 단순한 삶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조급증을 버리고 내 속도에 맞게 삶을 꾸려가고 있다. 

나는 매일 배우는 삶을 산다. 좋은 책을 읽으며 어려운 상황과 대면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배우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잊지 않으며 나답게 사는 법을 하나씩 깨우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책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고, '엄마라도 나답게'라는 독서모임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곳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유튜브도 시작하게 되었고, 팟빵, 브런치까지. 여러 플랫폼에서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침묵만 하고 순응만 하던 아이가 성장하여 이렇게 나를 드러내며 살고 있다. 그러는 이유는 단 하나, 자유. 나답게 살기 위함이다.


결국, 나는 엄마이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기에 나답게 살 것이다.  지금 이미 나는 그 삶 속에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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