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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Nov 01. 2020

아이가 내게 왔다

꿈이가 내게 와주었다

이상했다.

몸이 나른했고, 운전 중에도 조는 일이 생겼다. 아무리 피곤해도 운전 중에 눈을 감는 일은 없었는데.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휘청거리고 나서야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혹시...'


 달 전쯤 올해 아이를 가지면 어떻겠냐고 남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보다 몇 달 전만 해도 아이가 꼭 있어야 하느냐 물었던 나였기에 남편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네가 원한다면."이라고 답을 했다. 그러고는 한 달 후 피임을 끊었고. 그로부터 몇 주 뒤, 나는 고속도로 위에서 이상 징후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날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조금 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테스트기를 해보았는데 테스트기는 한 줄이 나왔다. 임신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요즘 내가 많이 피곤했나?'

피로도를 느끼는 게 이전과는 많이 달라서 의아했지만 결과가 임신이 아니라고 나왔으니 남편에게도 아니라 전하고 나의 의문도 잠재웠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테스트기를 처음 한 날 이후에도 계속 몸상태가 이상했던 것이다. 원래 생리주기가 들쑥날쑥했던 데다가 날짜가 지났다고 보기도 어렵고, 테스트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졸음이 쏟아져도 너무 쏟아졌다. 학교에서도 곧잘 졸았고, 운전 중에도 졸음이 쏟아졌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고, 2018년 7월 7일 남편의 생일날 아침.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오빠 몰래 테스트기를 다시 사용해 보았다. 아주 선명하진 않지만 이쯤이면 두 줄이라 말할 수 있는 결과를 보고는 놀랍고 기뻐 자고 있는 남편을 다급하게 깨웠다.


"오빠 이것 봐. 나 임신했나 봐."

자다가 깬 남편은 멍하니 테스트기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 어...?!"


맘카페에도 테스트기 사진을 올려보았다. 임신이란다. 축하한단다. 바로 병원 가서 확인할까 생각했지만 시기를 따져보니 너무 이른 것 같았다. 너무 빨리 가도 걱정할 일만 생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일주일만 참았다 가자 남편과 합의 보았다. 그 일주일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중간에 그냥 갈까 고민을 수시로 해야 했다. 기다림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빨리 확신할 수 있는 결과를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주일 뒤, 더 미루지 못하고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가능하다면 임신확인서를 받고 싶었다. 매일 2시간 40분 거리를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게 불안해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검진 결과 임신이 맞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빨리 왔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고, 바우처 받을 수 있는 카드를 은행에서 만들라는 안내까지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엄마가 되었다니. 아이를 낳지 않겠다 다짐했던 내가 엄마가 됐다니. 동시에 결심 하나가 굳어졌다. 꼭 이 아이가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게 하리라. 사랑을 듬뿍 주어 자신을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하리라. 내 부모님처럼 내 아이를 때리고 상처 주지 않으리라.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노력하리라.


그 결심이 선 후부터 나는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먼저 내가 성장해야 했고, 나를 먼저 사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부모님으로부터 진정한 독립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원망과 후회는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데 방해되는 감정이었다. 그 감정들을 치유하고 싶었다.


나의 결심 때문이었는지 모성보호시간을 써서 두 시간 일찍 퇴근해 집에 오면 마냥 쉬지 않았다. 자기 계발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전에도 해왔던 일이지만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간절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편은 좀 쉬엄쉬엄 하라고 말했지만 새벽 기상도 이어갔다. 졸음이 쏟아지고 피곤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그런 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커야 했으니까.


늘 부족했던 돈 때문에 다투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경제 공부도 시작했다.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경제 관련 서적도 사 보았다. 아침 출근길에는 뉴스 라디오를 들었고, 학교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돌이켜보면 나,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것이 내 상처를 곧바로 치유해주진 못했지만 그 상처로 인해 무너지진 않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든 깨우치고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다는, 그런 자신감이 생겼다.


내 아이 꿈이. 꿈이 많은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태명도 꿈이라고 붙여 주었다. 내 아이가 꿈 많은 아이로 자랄 수 있으려면 엄마인 나도 꿈꾸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꿈과 목표를 종이에 새기고 이루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나는 힘들다는 임신 기간을 꿈꾸며, 기대하며, 감사하며, 공부하며 보냈다. 초반 입덧에 고생 조금 하고, 후반 불면증으로 고생 조금 한 것 외엔 그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고 잘 보낼 수 있었다. 엄마의 노력을 아이가 알아준 걸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의 도움으로 난 임신 기간 동안 참 많이 배움의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자존감도 높아졌다.


기다려졌다. 곧 세상 밖으로 나올 내 아이와 나는 어떻게 성장해갈까. 그런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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