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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Mar 15. 2020

나는 왜 임신해서도 새벽 기상을 했을까?

2018년 12월 3일 자의 미라클모닝 기록을 꺼내본다. 그 당시 나는 임신 6개월 차였다.

거제도에 발령받고 주 5일 진주에서 거제까지 출퇴근 중이었다. 모성보호 신청으로 하루 두 시간 일찍 퇴근했지만 집에 도착하면 그 날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남편은 늘 회사에서 저녁까지 먹고 왔기 때문에 나 혼자 저녁을 챙겨 먹어야 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라면이나 가공식품으로 대강 때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엔 발랄한 개냥이 넷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뒤처리를 하느라 더 체력이 방전되곤 했다.

그렇게 피곤에 절어 저녁시간을 보내고 밤이 찾아오면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새벽 4시 반에 잠에서 깼다. 가끔 찾아오는 불면증 때문에 더 일찍 일어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네시 반에서 다섯 시쯤 기상했다. 새벽시간의 루틴은 늘 같았다.

일어나자마자 냉수 한 잔 마시고 커피를 타 서재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앉아서 다이어리에 일정 체크를 한다. 독서 시간과 경제 신문 읽는 시간, 그리고 블로그 하는 시간은 먼저 일상 계획표에 넣어둔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일상을 채운다. 빽빽한 하루 계획을 보며 시작하는 하루. 바인더 작성을 끝내면 바로 독서를 시작한다. 고요한 공간 속에 책과 나뿐인 그 시간. 빨려 들어가듯 읽고 메모하며 시간을 보내다 여섯 시에 출근 준비하러 일어선다.

몸상태가 안 좋을 때를 제외하곤 출산 한 달 전까지 새벽 기상은 계속되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읽고, 쓰는 시간으로 충실히도 보냈다. 고 3 때도 안 해본 새벽 기상을 나는 왜 그리도 열심히 했던가.

아이가 생기기 전에도 성장하고 싶은 욕구로 인해 꾸준히 자기 계발을 했다. 책을 읽었고, 독서노트를 쓰기도 했으며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20대를 방황의 시간으로 보내버린 기억 때문에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게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성장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애썼다. 애쓰는 내 모습이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자기 계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더 열심히 새벽 경영을 해냈다. 나에겐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 엄마가 세상의 우주인 줄 알고 태어날 아이에게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지... 불안했다. 나는 극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아이에게 표출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육아서 읽기였다. 내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과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대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많이 마주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아직 묻어둔 기억과 감정들이 많았고, 그들을 눌러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내면이 성장하지 않고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찼다. 나에겐 공부가 필요했고, 그 공부를 해내기 위해선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벽 기상을 그만둘 수 없었다. 실제로 새벽에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쓰면서 변화가 느껴졌다. 조금은 내가 단단해진 듯했다.


나는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아이와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불안과 두려움보단 행복을 느끼며 아이와 같이 커 갈 것이다.


자신했고, 그래서 엄마에게도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난 엄마처럼 안 키울 거야.


아마 이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내 새벽 기상의 동기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어쨌든 나는 홀로 새벽을 지켜내며 내 자신도, 그리고 내 아이도 지켜내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렇게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새벽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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