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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샘 Mar 11. 2020

그 유명한 전통과 만나다.

결국은 도망쳐버리다

사실 입학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학교에 고약한 전통이 하나 있다는 것을. 인터넷 신문 기사에도 실릴 정도로 문제가 된 행사인데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 새로운 걸 들이기는 쉬워도 있던 걸 없애지는 쉽지 않은 법이다.


이름하야 허슬. 모든 입학생이 한 달 내내 선배가 정해준 춤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러고는 3월 말, 무대에 올라가 공연해야 하는, 그런 전통이었다.

입학하기도 전에 이런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엔 겁을 한참 집어먹었다. 하지만 입학하고 난 뒤 나는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이것쯤이야. 그냥 하고 말지 뭐.'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5시에 수업을 마치면 빠르게 저녁을 먹고 강의실로 가 기숙사 문이 닫히는 11시 전까지 맹연습을 해야 했다. 주말에도 역시 모였다. 살이 절로 빠지는 일정이었다.




춤 연습하는 게 신선하고 재미는 있었다. 언제 또 이런 걸 해보겠는가. 선정 곡이 걸그룹 노래였고, 춤이 좀 야해서 그렇지 다른 것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물론 피곤하기도 했지만 이런 것쯤은 웃으며 넘어갈 만큼 나는 행복에 겨운 상태였다.

그런데 문제는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공연 날이 다가오자 이걸 진짜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다 같이 연습하는 건 재미있었지만 무대에 올라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보인다는  재미없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못하겠다고 말하고 빠져나왔다. 남은 동기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위에 올라가 도저히 그런 춤을 출 수는 없었다.

공연 날, 무대에 선 동기들을 보며 내 선택이 옳았음을 느꼈다. 태어나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짧은 반바지와 망사가 달린 시스루의 상의 옷을 입고 섹시춤을 추기에는 난 너무도 부끄럼 많은 사람이었다. 춤추는 동기들을 보는데 괜스레 내 얼굴이 벌게졌다. 그냥 평상복 입고 출 때와 시원한(?) 옷을 입고 추는 건 느낌부터 달랐다. 그날 다른 사람들의 무대를 쭉 보며 왜 이 허슬이 말 많은 전통인지 확연히 알았다.




사실 이 전통에 대한 문제는 내부보다 외부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누군가 저런 춤을 추는 선생들에게 우리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단다. 이 말이 완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말도 아니었다. 그리고 쉬쉬해서 그렇지 내부에서도 고통을 왕왕 호소하곤 했다. 이 춤을 연습한다고 꼬박 한 달가량을 잠도 제대로 못 잔 건 둘째치고 온갖 부상에,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한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불만표출하기 어려운 교대 분위기 특성상 거의 반강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제일 문제였다.

여전히 이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어떤 분위기에서 행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대두되었던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는 강제성과 선정성이었다. 그나마 내가 입학하기 전, 이 문제를 폭로한 인터넷 기사 덕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신입생들을 빼주긴 했다. 그런 의미에서 강제성의 힘은 좀 약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부하기 위해선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긴 했다. 대학 치고는 적은 규모의 인원이 작복작대며 지내는 공간이다 보니 그 속에서 다른 의견을 내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달가워하지 않는 선배의 표정을 이겨내야 했다.




나는 그 용기를 내지 못해 도망쳤지만 이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특혜를 업고 이뤄낸(?) 것이었다. 말할 용기 한 번 내볼 걸. 지금은 아쉬운 기억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 나이 많은 신입생이란 타이틀이 더 입을 다물게 했다. 나에겐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나이를 내세워 분탕질 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두렵기도 했다. 총대 맬 용기가 없으니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애써 설득할 수 있는 것들에는 소극적으로 참여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들은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허슬은 내가 피하고야 만 첫 번째 학교문화였던 셈이다. 


이 전통이 아직 살아있는 건 즐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이를 두고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고 평가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전통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길 바란다. 그동안 논란이 있던 부분들이 해소되었기를, 혹은 해소되어가고 있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논란을 낳는 전통보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전통으로 남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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