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 프루스트의 입맛 저장소
Issue No. 1 Green
이제 막 태어나 뽀얀 속살을 보여주는
봄날 여린 새순의 초록
덜 익은 사과의 풋풋한 초록
청양고추의 알싸한 초록
끓는 물에 살짝 데쳤을 때 더욱 선명하고
뽀드득해지는 시금치의 초록
맑고 쨍-한 하늘 아래 반짝이는
사이키 조명을 입은 나뭇잎의 초록
숲 속 습기 가득 모든 걸 품어 안고 있는 듯한
촉촉하고 짙은 초록
새순의 초록을 보고 있자면,
마냥 기특한 감정이 들고
풋사과의 초록을 보고 있자면,
‘이래 봬도 제 몫은 해. 나도 다 생각이 있다구.’
라고 말하는 꼬마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청양고추의 알싸한 초록을 보고 있자면,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단호하고 엄격한, 범상찮은 고고함이 느껴지고,
시금치의 초록을 보고 있자면,
목욕탕에 다녀오시던
할머니의 뽀드득하게 빛나던 광대와
개운한 안색이 떠오른다.
나뭇잎의 반짝이는 초록을 보고 있자면,
‘이리 와 너의 무대를 보여줘’하며 손 내미는
언니 같은 동생의 당돌함이 느껴지고,
숲 속의 촉촉하고 짙은 초록을 보고 있자면,
뒤에서 흐뭇하게 미소 짓는
신랑의 든든함이 느껴진다.
세상에는 다양한 초록이 있다.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어왔다.
당연하게 주어진 초록을
당연하게 보지 않게 되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초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한다.
그리고 안다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는
자연의 선물 같은 초록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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