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50세 N잡러의 하루-3편
한국 교육을 받은 나는, 우리는, 질문을 받으면,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도 꼭 정답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면서. 우리가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나라에서 교육받은 친구들은 문제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기도 하고-질문에 대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토론방식으로 접근을 하려고도 하고, 질문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많이 들었고, 듣고 있다. 인생에 정답(옳은 답) 또는 정답(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을. 이러한 관점에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현재 나는 실업자이다.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니, 지금과 같은 실업자인 시기들이 몇 번 있었다. 실업자의 시기를 개인의 인생에서 위기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많겠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돈이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내 의지로 위기 시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로 전기시험에서 떨어지고, 후기시험에서 시험점수 맞추어 입학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IMF 이전에 졸업을 했기 때문에, 성장 중인 대한민국에서 기업에서 일할 기회는 많았다. 운 좋게 들어간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입사 동기들보다 제품 설계, 개발에 재능이 없다는 것였다. 나름 팀장님으로부터 일머리 있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어떻게든 일을 하기는 했지만, 연구소에서의 나의 지속 성장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강점일까? 단점일까? 나는 메타인지가 상대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다. 바깥활동이 나에게 더 적합하는 것도 일을 할수록 느껴졌다. 다음 질문은 그럼, 나에게 적합한 성격의 일은 무엇인가? 지금도 잘 모르는데, 그때는 더 몰랐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여하튼 영어를 잘하면, 좀 더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워킹할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 시드니로 떠났다. 어학연수 학원 다니면서, 홈스테이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그럭저럭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삐걱거리고 있던 아버지의 사업이 폭싹 망했다는 소식으로, 6개월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막막했다. 첫번째 위기의 시절이다.
두번째 위기는 내 의지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맨붕의 시기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다행히, 기계공학과를 다니는 동안, 나는 홍일점이라 그런지, 모두 나를 이쁘게 봐 주신 것 같다. 한 교수님께서 정부 지원 산학협동사업을 하셨고, 연구원이 필요해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1년 정도 일했다.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재미가 없었다. 안정되고, 편안하고, 비슷한 일의 반복이고, 그런 종류의 일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한국의 대기업을 그만 둔 다른 이유는 -나는 제조하는 공장 환경에서 일했다- 하루, 분기, 반기, 한 해의 생활 형식, 유형이 반복성이 강했고, 그 부분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영화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 1936)》속 주인공 같이, 부속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니어 시절이기 때문에, 자율성은 더욱 없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연구원 일을 하면서, 계속 기업에 경력직으로 지원했다. 6개월 영어 어학연수 갔다 왔다고 해서 영어가 뭐 대단히 늘었겠냐? 그래도, 대기업 경력과 영어 능력을 잘 포장해서 지원을 계속했다. 다행히 대기업 연구소에서 했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 또다른 대기업에 입사 통지를 받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학협동사업 연구원 일을 그만 두었다. 그런데, 난데없어, 갑작스러운 불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 내 인생에 그렇게 난감한 적은 없었다. 당시, 우리 나라는 일본과 공동 개최한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로 전국민이 열광하고 있던 시기였다.
셋번째 위기는 현재 실업자가 된 이유와 비슷한 상황과 이유였다. 두번째 위기 시절 동안, 부모님 집에서 방구석 퀵도 하고, 동네 초등학생 대상 영어 학원 강사도 하고, 고향에 있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분명 정신과 마음이 평안하지 않은 시기였다. 그 당시 인생책을 만났다. 초심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 다시 구직활동을 했다. 여러 회사들에 문을 두드렸고, 그 중 하나가 내 인생 회사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계 회사였다. 지원한 포지션에 일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내 꿈인 서울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일타쌍피, 일거양득,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사실 그 당시는 그 일에 대해 잘은 몰랐지만, 활동적인 일이 나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권위적인 한국기업 문화가 아닌, 수평적 선진국 기업 문화가 나와 더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류합격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영어 면접을 위해서 많이 준비하고, 노력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합격을 했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을 감히 사용해도 되려나? 이 회사에서 정말 가슴 뛰게, 재미있게 일했다. 곧 다른 제목으로 이 회사에서의 일, 경험과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할 계획이다.
네번째 위기는 지금의 실업자 시기이다. 인생 회사에서 내부 승진도 몇 차례 하면서 포지션도 변경해 가면서 나름의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생 회사가 속한 산업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특히나, 아시아,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로 인해서, 회사는 계속 조직구조와 체계을 변경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속한 조직과 팀은 없어지게 되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결혼을 한 지 2년 정도 지난 시기였고,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를 회상하면, 자신만만했던 것 같다. 30대였으닌깐. 쉬었다가, 난 다시 운 좋게 외국계 기업에 취업을 했고, 지난 13년 이상을 그 회사에서 일 했다.
질문에 대한 내 결론은 “위기로 지속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자기 하기 나름이다”이다. 이런 과정 속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운빨이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위기들은 해 볼만큼 하다 보면, 분명 기회가 되었다. 운(運)에게도 고맙다.
밸런스 퀴즈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저의 네번째 위기는 위기로 지속될까요? 아니면 기회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