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오시는 분들만 지속적으로 오십니다. 그중 한결같이 술을 드시고 얼굴이 붉고 알딸딸한 느낌을 가진채 오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항상 대출하시는 책은 청구기호 100번대의 고전과 인문학, 철학 책이었습니다. 공자, 맹자, 플라톤 이 분들의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준 높은 술주정인지, 아님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술 드시고, 맨 정신으로 도서관을 오시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이 분과 두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말없이 제 자리 앞에 서 계시다가 갑자기 말을 거시곤 했습니다.
그분 :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 : "글쎄요"
그분 : "없어요."
일하고 있는데 앞에 와서 쳐다보면서 서계시니 신경이 쓰였습니다. 거기에 술 냄새도 항상 풍겨서 약간 긴장도 되었습니다. 무슨 일 생길까 봐서요. 근데 오늘은 귀신의 존재 유무를 물어보시니 조금 황당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웃겼습니다. 역시나 술 냄새를 풍기며, 오셨는데, 이 날은 오자마자 말을 하셨습니다.
그분 : 분명 내가 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술을 마셨는데, 책이 없어졌어! 하아
나 : 분실하셨으면 똑같은 책으로 구매해오셔야 해요. 책 제목이랑 출판사, 작가 이름 말씀드릴게요.
그분 : 내가 분명 옆에 놓고 마셨는데, 그게 왜 없어졌지?
나 ;...(할 말 없었습니다)
그분 : 정말 환장하겠네 그 책이 어디로 갔을까
선생님, 진짜 제가 책을 딱 테이블에 놓고 술을 마셨어요. 근데 다 마시고 나니 책이 없어. 감쪽같이 사라졌어! 돌겠네
나 :...(말없이 제 일을 했습니다)
그분 : 그 책을 분명 가지고 나와서 옆에 두고 마셨는데. 진짜로 사 와야 돼요? 돈으로 주면 안 되나?
나 : 네 저희는 돈을 받지 않은 똑같은 책으로 변상을 받습니다. 책을 구매해오신 날이 반납일이 되니 빠른 시일 내에 구매해오실수록 연체일수가 줄어듭니다. 책 정보 적어드릴게요.
그분께 책 정보를 적어서 드렸습니다. 그래도 제 자리 앞에서 한참 서계시다가 가셨습니다.
고풍스러운 술주정일까요?? 술 마시고 고전을 빌리러 오시는 것이요. 아님 취하지 않을 정도로 술 드시고 도서관에 오시는 걸까요?
술 드셔서 벌게진 얼굴, 술 냄새, 걸음걸이는 갈지자로 걷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제 앞에 와서 서계시는 것이 주사일까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