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촌역, 염창동에 삽니다를 시작하며
첫 독립, 첫 서울살이.
서른 중반까지 인천에서 가족들과 살다가 조금은 늦은 독립을 하게 됐고
어쩌다 보니 아는 사람도 없고 , 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염창동으로 오게 되었다.
2021년 초에 이사 와서
강서구 염창동 주민으로 지낸 지 5년 차, 그리고 지금 집에서의 계약만료까지 몇 달이 남지 않았다.
5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다니 인생에서 가장 빠른 5년인 거 같다.
이사 왔을 때는 코로나 시대 여서 회사 집, 회사 집만 왔다 갔다 하다가 집순이가 되어 버렸고 코로나가 끝나도 집순이 성격이 베였는지 주구장창 집에만 있었다.
그러다 이제야 조금씩 바깥 구경을 시작했는데 끝이라고 한다.
사정상 더 살 수 없을 거 같다.
동네가 보이고 마음이 붙었는데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씁쓸하고 그저 믿기지가 않는다.
모든 시절을 인천에서 보내고 낯선 이곳으로 떠나 올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정이 너무 많이 들었나 보다.
아니 정 이상의 무언가 있었던 거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만한 게 이곳은 내가 늘 꿈꿔 왔던 걸 현실화시켜줬다.
무언가 대단한 걸 이루는 꿈이 아니라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어떤 느낌일까? 입에 달고 살았던 말들, 생활형 꿈같은 것들이 이뤄진 곳이다.
좋아하는 것들의 꾸러미를 옆에 두고 있는 듯 한 느낌이랄까?
아쉽게도 꾸러미를 자주 펼치지 못했고 , 꿈의 현실화 속에서 많은걸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못해보고 떠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그 꾸러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뭘 하지 않아도 발만 뻗으면 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하는 두려움과 팍팍하고 조금은 쓸쓸한 서울 생활에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단순히 잠시 머물던 곳이 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물론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겠지만 떠날 때가 되니 뭐든 것이 미화된 것도 한몫하는 거 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무래도 나 염창동 많이 좋아하나 보다.?
흔히들 말하는 서울병이 아니라 염창병에 걸린 것 같다.
뭐 고향도 아니고 오래 산 것도 아니고 어디 멀리 해외로 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유난이나 싶겠지만 원래 처음이라는 게,
처음이란 말이 붙으면 더 애틋한 거 아닐까?
그리고 그 처음이 마음에 들었다.
굉장히 괜히 아련하고 몽글몽글 하고 그렇다.
강렬하게 뜨겁고 더웠던 여름에는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해서 와닿지가 않았는데
길가에 나뭇잎들이 노랗게 조금씩 물드는 걸 보니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하니 이곳 에서의 시간이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게 느껴진다.
나 , 잘 이별할 수 있을까?
그립고 그리울 , 아쉽고 아쉬울
첫 독립을 함께 해준 나의 제2의 고향, 내가 좋아하는 동네 염창을 기억하고
잘 이별? 하기 위해 염창동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