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창은 어디?
“등촌 어때? “
노량진에서 서울 살이를 하고 있는 친한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등촌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다다다다 써 내려가는 문장
하도 힘들다... 힘들다 서울로 왔다 갔다 거리는 거 아주 징글징글하다 매일
노래를 부르는 내가 너무 안타까웠다보다.
이 것 저것 알아보다가 우연히 등촌 이란 곳을 봤는데 내 생각이 번뜩 났다고 한다.
사실 성인이 되고부터 서울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많이 다녔다.
무슨 열정이었는지 출퇴근 왕복 4시간쯤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근데 이게 오랫동안 지속되고, 반복되고 , 나이는 늘어가고 결국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니 그때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체력 에도 한계가 오고 그렇다고 모아둔 돈도 없어서 독립할 형편은 안 되고
그리고 서울로 간다고 뭐 달라질까 싶고
여태 뭐 했나 싶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삶 자체에 의욕도 없고 자신감도 없는 상태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그런 곳이 있구나 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등촌... 등촌?이라면 등촌 공개홀?
학창 시절 나의 열정을 담당했던 나의 신화 오빠들을 보러 왔던 그 등촌?
등촌 샤부샤부?
바로 지하철 노선도를 켜고 등촌 역을 찾아보니
9호선, 강남 쪽으로 출근할 때 타 던 그 지옥철이었다.
고속터미널 쪽으로는 많이 가봤어도 그 반대 방향으로는 가본 적이 없기에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당시) 다니던 회사와도 멀지 않고 여의도도 가깝고 강남도 조금 멀긴 하지만 한 번에 가고 음 김포공항도 가깝네? 이곳저곳 가기 좋아 보이네?
낯설긴 한데 낯설지가 않네? 뭔가 괜찮아 보이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은데
괜히 좀 설레는데?
되려면 그냥 된다 더니
서른 중반이 넘도록 독립 한번 못하던 내가 뭔가에 홀린 듯 눈떠보니 등촌에 와 있었다.
매일 라면만 먹더라도 한번 해보자
굶어 죽지는 않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등촌 주민, 아니 염창동 주민이 되었다.
염창동이란 이름은 조선말 서해 염전으로부터 수집해 온 소금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위치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위치는
지하철역으로 보면 염창역과 등촌역에 걸쳐 있는데 나는 등촌 역에 가까운 염창동에 산다.
그래서 누가 어디에 사냐고 물으면 등촌에 산다고 한다.
염창이라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하고 등촌이라고 하면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긴 하다.
나 역시 염창이란 동네를 와서야 처음 알았으니 이해한다.
그리고 등촌 하면
하나 같이 등촌 칼국수?라는 말을 덫 붙이는데 아마도
강원도 하면 감자, 영주 하면 사과, 의성 하면 마늘, 목포 하면 낙지, 공주 하면 밤
제주 하면 귤처럼 특산물 같은 존재인 듯하다.
정말 등촌에 정말 ‘등촌 샤부샤부 칼국수’가 있을까?
이건 나도 정말 궁금했던 이야기라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고 싶다.
염창은 작은 동네이다.
보통 1 동 2동 큰 동네는 몇 동까지 나눠져 있는데 염창은 몇 동 그런 게 없다.
그냥 염창동 하나다
그리고 위키 백과에 보면 동쪽은 목동, 서쪽은 등촌동과 가양동, 남쪽은 화곡동, 북쪽은 한강을 마주하고 있다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곳 기준으로는 오른쪽 조금만 걸으면 등촌동과 가양동이 있고 길 하나 건너 맞은편으로 목동이 있다.
이사 와서 제일 먼저 산 게 종량제 봉투인데 아무 생각 없다가 무심코 봤더니 강서구가 아니라 양천구라고 쓰여 있는 것이었다.
분명 동네에서 샀는데 뭐지?
알고 보니 길 하나 사이에 두고 구가 바뀌는 것이었다. 목동은 양천구다.
몇 걸음만 걸으면 동과 구가 바뀐다? 왠지 재밌고 신기한 동네다.
서울은 원래 이런 건가?
그리고 또 신기한 게 사람이 많은데 마음이 편안하다
대문자 I 성향이라 그런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기가 쪽 빨리는데 심지어 지하철만 타도 그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만 기다려도 그러는데 여기는 이상하게 불편하지가 않다.
작은 동네에 아파트, 오피스텔, 빌라가 가득하고 사람이 오밀조밀 꽉꽉 차 있어서 복잡하고 산만한 거 같은데 들떠서 붕 떠 있는 느낌이 아니라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다.
복잡한데 안 복잡하고 산만한데 안 산만하다.
아무래도 단순히 사람이 많고 없고의 차이는 아닌 거 같다
예를 들면 난 똑같이 사람 많은 용산 이태원을 가면 뭔가 기가 확 빨리는데 홍대 합정 성수 쪽은 복잡은 해도 나름 마음이 평온하다.
그게 용산은 기가 세서 기가 눌려서 그렇다고 한다.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음... 기운이라기보다 그냥 결이 안 맞고 맞고의 차이겠지?
어떨 결에 왔지만 결도 맞고 왠지 재밌고 신기한 염창
염창에 산다는 건 그저 다행이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