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왜 여기에 있어?
염창에 이사 와서 가장 놀랐던 건 바로 한강이 옆에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강은
여의도 반포 뚝섬 합정 정도 여서 그 동네를 가야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사 오기 전에도 이사 와서도 한 동안은 전혀 몰랐다.
아는 사람도 없고 누가 알려줄 일도 없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지도 앱을 켜서 주변에 뭐가 있나 살펴보는데 ’‘’ 강이 있네?‘
음 그냥 강이 지나가나 보다 하면서도 혹시 몰라 염창동 한강, 등촌 한강을 검색해 보는데
세상에. 가는 방법을 올려놓은 글이 하나 있었다.
복잡해 보였지만 갈 수 있긴 한 거 같았다.
그렇게 한강을 찾아 나섰는데 동네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좀 많이 헤맸다.
거기다 여의도나 뚝섬처럼 확 펼쳐져 있어서 바로 보이는 게 아니라 산책로와 자전거길만 있는 작은? 한강이라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 더 못 찾았던 거 같다.
“여기로 가면 있는 거 맞아?”
라는 말을 백번 하면서 의심하면서 지도를 보면서 겨우겨우 찾아냈다.
찾은 곳은 바로 ‘염창 나들목‘이다.
이곳 굴다리를 통과하면 짜란 하고 강이 나온다.
한강을 보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이 울컥하는데 뜻밖의 선물 같은 느낌? 요즘말로 득템? 한강을 득템해 버렸다.
그냥 너무 신기하고 이 동네에 오게 될 운명이었나?
갑자기 운명론자가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나는 한강을 정말 좋아한다.
벚꽃 필 때 면 흩날리는 핑크색 꽃을 보러 가고 날이 따뜻해지면 돗자리에 누워 물 멍 나무 멍 하늘 멍을 때렸다.
저녁 바람이 좋을 때면 친구와 한강 편의점 의자에 앉아 칼칼한 컵라면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생일에는 케이크에 초를 불었다.
기타를 한창 배우던 어느 날에는 기타를 메고 가서 뚱땅 거리기도 했다.
20살 때부터 부지런히 한강을 다녔다.
탁 트여있고 물이 찰랑이고 넓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천에서 거리가 꽤 있었지만 멀어도 멀지 않게 느껴질 만큼 가는 걸 참 좋아했다.
그리고 항상 생각했다.
이 앞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걸어서 산책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그 마음은 어떨까?
근데 그런 한강이 내 옆에 눈앞에 있었다.
이런 기분이구나. 좋은 걸 떠나서 안 믿기는 기분?
물론 늘 가던 여의도 한강처럼 넓고 크게 펼쳐진 한강은 아닌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하나씩 있는 조금은 좁은 길이었다.
그래도 탁 트여있고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건 같았다.
집에서 걸어와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이런 게 행복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정말 엄청난 사실은 조금만 부지런히 걸어가면 선유도 한강 양화공원이 나오는데
고요하고 나무들이 우거져서 너무 예쁜 곳이다.
여름에는 초록이 한 가득이어서 걷고 있으면 피톤치드가 온몸을 통과하는 거 같고
5월이 되면 장미공원에 장미가 한가득이어서 알로록달로록한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에는 색이 입혀지고 몸에는 꽃향기가 베이는 거 같다.
이렇게 좋은 곳을 또 걸어서 오다니
역시 안 믿긴다.
요즘은 러닝이 유행이라 그런지 저녁쯤 한강에 나가면 뛰는 사람이 정말 많다.
분명 나름 조용한 한강이었는데 놀랍다.
달리기가 좋긴 좋은가보다. 아마도 염창 가양 등촌 목동? 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모이는 듯하다.
조용한 한강을 좋아하지만 또 이렇게 달리는 사람이 많으니 나름 장점이 있다.
적당히 산책만 하고 와야지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앞사람을 따라 뛰고 있다.......
그냥 아무나 보고 뛰면 뛰게 된다. 거대 러닝 크루 같다.
그렇게 뛰고 있으면 또 역시 안 믿긴다.
내가 한강을 뛰고 있다니?
여전히 지금도 한강을 갈 때마다 안 믿긴다.
그리고 한강으로 갈 수 있는 길목이 두 개 더 있는데
이사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염창나들목이 공사를 시작해서 그쪽으로 갈 수가 없어서
찾게 된 곳이다.
하나는 ‘염강나들목’이다. 증미역 쪽으로 간 뒤에 가양도서관을 거쳐서 황금 내 근린공원을 지나서
가는 곳인데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 지금은 잘 안 가는데 ‘염창 나들목‘이 공사 중일 때는 종종 그쪽을 이용했다. 이곳에서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는데 서울둘레길 14코스 안양천 하류 코스로 구일역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와 정말 알면 알 수록 신기한 곳이다.
또 하나는 위치상 지도를 보니 염창동 118로 나온다.
이곳으로 통해서 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거 같다. 늘 북적북적하다.
나도 요즘은 이곳을 애용한다.
‘염창나들목’ ‘염강나들목’ ‘염창동 118’
언제든 넓은 하늘이 보고 싶거든, 울창한 나무가 보고 싶거든, 꽃이 보고 싶거든
달리고 싶거든 , 그저 걸으면 된다.
아 참참 그리고 염창나들목 바로 앞에 꽤 맛있는 ‘BA’라는 커피집이 있는데
산책 후 한잔 사 먹으면 기분이 괜히 더 좋아지고 한껏 더 뿌듯해진다.
플랫화이트가 맛있다!
한강에 맛있는 커피라니
그저 또 안 믿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