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 계 일주

그맘때 나는 타살에 의한 죽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by 형화

우리는 조금씩 일그러져 있는 면을 모르는 체 하는 식으로 살고 있다

온전한 것만을 내놓을 수 있는 삶의 매대 위로 올려놓을 것이 없는 이는 계속해서 누구도 모르는 좁은 곳으로 미끄러져 간다

서서히 사람과 살아감의 이름을 잊게 된다

한없이 계속 미끄러지다 이윽고 거친 땅을 밟고서 검은 허공을 향해 묻는 이의 표정은 공허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요?

허울뿐인 이름만을 가진 것이지

매대 위에 올라본 적도 없는 이는 그런 삶을 모른다

남길 수 있는 것은 습기뿐

그는 쪼그려 누워 땅을 적신다

누군가의 슬픔을 머금고 태어난 존재는 공허의 삶을 답습한다


그맘때 나는 타살에 의한 죽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은 계속해서 성별을 물었다

늘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저 웃기만 했다

오래 전 우울한 애인에게 우리 같이 좋아지자고 말하던 때 그 애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아 젖은 눈으로 반추하였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이름만을 품었고 좋아진 모습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남성으로 그 애를 좋아했던가 그 애는 어떤 성별로 나를 사랑했던가

너에게는 매일 아침 일력을 뜯어내는 정도의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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