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냉기를 헤치며 걷는다
말발굽처럼 강하고 들풀처럼 연약한 걸음을 짓이긴다
현관 앞에는 늘 박스가 발에 채인다
기계처럼 겉옷을 벗어 걸고 식탁에 지갑을 내려놓고
보일러를 켜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낸다
그 날 밤 꿈에는 괴한이 나왔다
현관 밖 복도에서 새끼고양이 소리를 흉내내며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장대를 가져다 문 틈으로 괴한을 제압하고
언제인가 문득 손에 쥐여진 칼로 급소를 찌른다
그는 목숨을 구걸하고 내가 괴한이 된다
괴한은 시체를 앞에 두고 주저앉은 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아침, 어린 새가 운다
방 안에서 퍼덕이는 듯 날개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괴한은 일어나 얼굴을 닦고
전 일 벗어둔 옷을 역순으로 입는다
괴한은 박스를 집어들고 현관을 나선다
복도에 새끼 고양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