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하철역의 공중전화 앞에서 책 읽는 여자를 봤어요
아주 두껍고 가벼워보이는 책을 들고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주 오래 그 자리에 서있었던 걸까요
반대편에는 소리치며 팔다리를 내두르는 남자가 있고
전화를 기다리는 중엔 아무래도 경황이 없겠지요
반소매를 입은 사람이 공중전화를 쳐다보면서 지나가더군요
책을 든 여자는 하얀 목련같은 목도리 안으로 아랫입술을 집어넣고
플랫폼에는 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비상구의 초록 불빛만이 남은 늦은 밤
마지막 책장이 덮이고 나무뿌리처럼 굳어진 목을 들어올렸을 때
공중전화의 수화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바닥에 누워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