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존재_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존재들의 이야기 - 06화
아침이 왔다.
창문 틈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그는 눈을 떴다.
이름도, 직업도 없는 남자였다.
그는 특별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증명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살고 있는 사람'으로만, 조용히 존재했다.
눈꺼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방 안의 모양을 천천히 드러냈다.
벽, 시계, 책상, 의자.
모두 어제와 같았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 사실 안도했다.
침대 옆 탁자 위엔 어제 반쯤 남긴 물컵이 있었다.
먼지가 표면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컵을 들었다.
물은 식어 있었지만, 여전히 물이었다.
그는 목을 축이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방 안의 공기가 조금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이,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거실의 시계는 오전 9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매일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비슷한 시각이었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먼지와 냄새, 공기의 온도까지 느껴졌다.
그는 그 감각이 좋았다.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아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피부에 닿는 순간이었다.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출근하는 사람, 학교 가는 아이들, 택배를 나르는 기사.
모두 목적을 가지고 바쁘게 걸었다.
그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다들 여전히 움직이네.”
중얼거린 말은 금세 공기 속으로 스며 사라졌다.
그는 여전히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직장도, 약속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불편하지 않았다.
사람이 꼭 무엇을 해야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그저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점심 무렵, 그는 집 근처를 걸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가로수 그림자는 바닥 위에 규칙적인 무늬를 만들었다.
그는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손에 쥔 커피는 금세 식었다.
하지만 그 미지근한 온도가 좋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 감각.”
그건 지금 이 삶과 닮아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처엔 오래된 이름들이 있었다.
어떤 번호는 이미 사용 중지였고,
어떤 이름은 왜 저장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의 이름을 오래 바라보다가, 전화를 걸지 않았다.
“굳이, 지금은 아닐지도.”
화면을 끄자, 유리 위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그걸로 충분했다.
저녁 무렵, 빛이 천천히 식었다.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하루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식탁 위엔 반찬이 세 가지.
김치, 달걀프라이, 밥 한 공기.
그는 조용히 식사를 했다.
젓가락 소리와 밥 씹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 소리가 유일한 대화였다.
식사를 마치고, 불을 끄고 앉았다.
바깥의 불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음악이 들렸다.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였다.
그는 그 멜로디에 귀를 기울였다.
피아노 소리가 공기 속을 천천히 돌았다.
그 순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밤이 깊었다.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천장엔 아무 장식도 없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좋았다.
무언가를 더 가지려 애쓰지 않아도,
지금 이 공간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눈을 감으면, 낮의 소리들이 남아 있었다.
바람, 웃음, 발자국, 냄새, 먼지, 그리고 피아노.
모든 게 사라지지 않은 채, 조용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생각했다.
‘존재한다는 건 어쩌면, 계속 느끼는 일인지도 몰라.’
그건 증명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살아 있다는 건, 세상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일.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공기를 흔들었다.
공기가 다시 그를 감쌌다.
그는 그 사실이 좋았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이날의 끝에,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않아도,
그는 세상을 기억했다.
그게 그가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