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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 존재 가치를 효율로 환산하는 자

Part 1 - 존재의 약속

by 박세신

대형 강당의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잔잔한 현악이 깔리고, 무대 중앙의 스크린이 켜졌다.
‘굿윌 휴먼사이언스’ 로고가 심장의 파동처럼 천천히 숨을 쉬었다.
관객석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의사, 기자, 투자자, 환자 가족들, 그리고 초청받은 정치인들까지.
모두가 숨을 죽였다.
무대 뒤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그는 단정한 회색 수트를 입고 있었다.
눈빛은 따뜻했지만, 그 미소의 곡선에는 차가운 균형감이 있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건 단순히 한 연구의 발표를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인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그 첫 걸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남자는 손을 들어 조용히 박수를 멈췄다.

“굿윌 휴먼사이언스는 인간의 ‘가능성’을 연구합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위로처럼 흘러내렸다.


‘회복’, ‘균형’, ‘치유’, ‘미래’ —
그 단어들은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 좋은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인류를 바꾸려는 게 아닙니다.
‘되찾으려’ 합니다.
시간이 빼앗아간 것들, 질병이 앗아간 것들,
그리고 세상이 잊은 존엄을 되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스크린에는 한 노인의 영상이 재생됐다.
손을 떨며 글씨를 쓰던 그가, 다시 곧은 손으로 편지를 마치는 장면.
그 아래 자막이 떴다.


“Project SERAPH에 참여 후, 손가락의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청중석에서 웅성임이 일었다.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무대 위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감정을 느끼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계산된 타이밍이었다.


화면에는 이러한 문구가 띄워졌다.

GoodWill Human Science — ‘Project SERAPH’

Seraph = 천상의 존재. “고통받는 인간을 치유하는 천사 프로젝트”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마지막 기술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건 치료이자, 인류의 진화로 향한 준비입니다.”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고, 영상은 가족의 장면으로 바뀌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어머니, 병실에서 일어나는 환자,
그리고 실험복을 입은 연구진의 미소.
그 모든 장면은 따뜻한 음악과 함께 ‘희망’의 연출을 완성했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며,
모든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는 그 순간을 함께 목격하는 것.”

박수가 터졌다.
기자들은 사진을 찍었고, 방송 자막에는 문장이 흘렀다.
〈굿윌 휴먼사이언스 —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그는 연단에서 물러나며 미소를 유지했다.
그러나 무대 뒤로 걸어들어가는 순간,
그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명이 닿지 않는 복도,
그곳에서 그는 작은 이어마이크를 벗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효율은 언제나 아름다워.”
그의 속삭임은 마치 습관처럼 흘러나왔다.


“우리는 인류를 구원합니다. 하지만 구원이란 언제나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는 과정이죠.”

그는 옆을 보았다.
보좌관이 서류 뭉치를 그에게 넘겼다.

‘참가자 프로필’.
각 페이지에는 노인, 장애인, 노숙자, 신용불량자, 중증질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신은 언제나 제물을 요구했지.
우리는 그저,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그것을 바칠 뿐이야.”

“그들이 사라져도 세상은 고요하고,
그 고요 위에서 새로운 문명이 자라날 거야."


그의 말에 보좌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서류를 덮고 말했다.
“효율은 언제나 희생을 필요로 해.”


그날 밤, CEO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창가에 앉아,
‘비공개 연구 보고서’를 열었다.
문서 상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부 회람용: Project SERAPH(Systemic Efficiency ReAlignment Protocol for Humanity)

<인류를 위한 체계적 효율성 재조정 프로토콜>

그는 조용히 낭독하듯 읽었다.

“인간의 존엄은 생물학적 효율의 부산물이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불필요한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
불필요한 자원의 소모는 낭비이며, 낭비는 곧 죽음이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자부심에 가까운 미소였다.

“따라서, 인간의 회복이란 곧 효율의 회복이다.”


그가 ‘저장’을 누르자, 화면 하단에 한 줄이 떠올랐다.

[파일 암호화 완료 — 내부 접근 제한.]


그는 존재의 가치를 효율로 환산한 것이다.


그로인한 그의 목적은 사실, 소인류 사회를 개척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인간의 크기가 1/100로 작아지면, 부피와 질량은 1/1,000,000로 줄어든다.

그에 따라 소비하는 자원은 약 1/31,600 수준으로 감소한다.

한 사람이 물 한 방울로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쌀 한 톨이면 하루의 식량이 된다.

A4용지 한 장 크기의 땅이면 호화로운 저택을 지을 공간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감춰진 목적의 배후에는 각국의 많은 권력자들의 모의가 있었다.

'인류는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지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해요!'

'그렇지만 더이상의 비윤리적 행위는 안됩니다!'

여러가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때 가장 힘있는 목소리는 지금의 굿윌 휴먼사이언스의 CEO, '최도현'이었다.


"여러분들의 말씀, 모두 맞습니다! 잠시 제 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런 세상 상태에 대한 고찰을 해왔습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류는 늘어나고 있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그 해답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저를 지지해 주시겠습니까?

확실한 약속만 해주신다면, 제가 그 선두에 서겠습니다!"

확고하고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였다.


그러자 한 남자가 말했다.

"최 대표님, 우리는 이미 파트너이자, 서로가 서로의 지지자 아닙니까?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누가 함께하겠습니까?

약속을 청하지 않으셔도, 우리는 이미 한 팀입니다."


최 대표가 그 말에 화답했다.

"말씀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인류를 축소 시킬 것입니다."


그 말에 다들 웅성거리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 최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인류를 축소시키는건 조금 시기상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상황 아시지 않습니까?"

아마도 이들은 최 대표의 말을 인구 수를 줄이자는 말로 오해 한것 같았다.


최 대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여러분! 인구 수를 줄이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 휴먼 사이언스 CEO 입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힘써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감히..

말 그대로 인간의 크기를 줄이겠다는 말씀입니다.

소인류 말입니다! 새로운 인류형이죠! "


다들 순간 멍 한듯 멈칫했다. 말 실수를 했다는걸 알아차리자 곧바로 박수 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역시! 최 대표님이 그런 생각을 하셨을리가 없죠. 이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하하-"

다같이 한바탕 웃으며 평화롭다는 분위기를 형성하자 다른 남자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해결책을 주시겠다는건, 지금 모든 실험 단계가 끝났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최 대표는 한껏 힘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 최도현의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막대한 지원에 미리 감사드리며,

굿윌 휴먼사이언스의 공은 모두 여러분과 새로운 인류의 위상에 돌리겠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그의 허울은 잘못된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 앞, ‘Project SERAPH 연구소’행 셔틀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창문에는 “Goodwill Human Science —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내일”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손끝이 굳은 노인, 허리춤에 약봉지를 찬 남자, 팔에 여러 주사 자국을 가리려는 젊은 여성,
그리고 초등학생 아들의 사진을 손에 쥔 어머니.

그들 모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의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 가치는 이미 0에 수렴하고 있다는 것.
그들에게 이 치료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살기 위한, 혹은 죽기 전에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선택.


연구소의 강당 안은 따뜻했다.
조명이 낮게 비추고, 벽면엔 금빛 로고가 빛났다.

<Goodwill Human Science — Project SERAPH>
그 아래, 흰 글씨가 번졌다.
“삶의 회복,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거의 마지막 희망만 남겨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 — 그 미약한 희망만으로.


무대 위로 남자가 올랐다.
회색 수트, 단정한 미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완벽히 조율돼 있었다.

“여러분,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Project SERAPH는 단순한 연구가 아닙니다.
이건 삶의 회복 프로그램, 그리고 새로운 인류 복원 프로젝트입니다.”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됐다.
병실, 인공호흡기, 절망의 얼굴들.
그리고 다음 장면으로는
손을 잡은 가족, 휠체어에서 일어서는 사람,
다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


“우리는 포기된 병과 싸워왔습니다.
우리는 치료도, 마지막 기회도 아닌,

여러분의 새로운 첫 번째 삶을 드리고자 합니다.”


조명이 따뜻하게 바뀌었다.
음악은 잔잔했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분들께는 전 과정 의료비 전액이 지원됩니다.
치료 중 발생하는 비용, 약제비, 입원비, 식비 — 전부 포함됩니다.
또한 프로그램 종료 후에는
장기 의료관리, 사회복귀 지원금,
재취업 및 주거 지원, 가족 생활비 보조금이 제공됩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청중이 서로를 바라봤다.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전부 지원해주고, 보조금까지 제공된다고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생활비 보조금으로는 500만원이 지급됩니다."


남자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물론, 이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참여는 인류의 역사에 남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첫 세대,
‘SERAPH Generation’ — 그 이름에 여러분이 새겨질 겁니다.”


플래시처럼 조명이 번쩍였다.
무대 뒤 스크린에 새로운 영상이 떴다.
SERAPH 로고 위로 천사가 날아오르는 그래픽.
그 아래 문구.

“당신의 용기와 참여는 인류의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청중의 몇몇은 눈물을 닦았다.
누군가는 조용히 손을 모았다.


그때 한 젊은 여자가 손을 들었다.

“저기… 전액 지원에 보조금까지 준다는건,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다는거 아닌가요? 부작용은 없나요?”


잠시 조용했다.
남자는 미소를 유지한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그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새로운 시도엔 언제나 변수가 따르죠.
하지만 SERAPH는 **국제 의학윤리위원회(IEB)**의 정식 승인을 받은,
세계 최초의 의료-의식 통합 임상 시스템입니다.
전 과정이 국제 기준에 따라 관리되고,
모든 참여자는 철저한 의료 감독 아래에서 보호됩니다.”


그는 손을 들어 슬라이드를 넘겼다.
‘IEB 승인 코드’, ‘국제공동 임상’, ‘생명윤리 인증 마크’들이 스크린에 차례로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
실험이 아닌, 치료입니다.
여러분은 환자가 아니라, 참여 연구자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들어오면, 여러분은 인류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의 말끝에 화면이 천천히 바뀌었다.
밝은 하늘 아래,
다시 걷는 노인, 웃는 아이, 눈을 감은 사람의 얼굴.

“이건 여러분의 마지막 기회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첫 번째 삶입니다.”


서류가 배포됐다.
직원들이 줄을 서서 펜을 건넸다.
서류 맨 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참여 동의서 – Project SERAPH Phase 1〉
그 아래, 흐릿한 회색 글씨로 작은 문장이 있었다.

“특수 신경·세포 정렬 절차 중 일시적 의식 중단 및 물리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음.
연구 목적상 일부 과정은 비공개일 수 있음.”


누구도 그걸 읽지 않았다. 아니,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펜을 들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는 노인은 떼어낸 안경을 끼고, 펜을 잡았다.
젊은 여자는 눈을 감고 서명했다.


“여기, 여기 적으시고 서명하시면 됩니다.”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바로 검진과 등록이 진행돼요.”


서명 소리가 잔잔히 이어졌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
사람들의 한숨,
그리고 묘하게 달콤한 향기.

무대 뒤 스크린이 마지막으로 꺼지기 전,
로고가 다시 떠올랐다.

“Project SERAPH — For Humanity, and beyond Humanity.”


그날,
강당을 나선 사람들 중 일부는 실험실로 바로 실려갔고,
일부는 검진실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그들의 이름은 사라지고, 번호만 남았다.

SUBJ-014.

SUBJ-019.
SUBJ-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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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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