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실무자 가이드 : 우즈벡 노동자를 중심으로
4.2 실패 사례: 인천 C 섬유공장
#기업 개요:
-업종: 의류 및 섬유제품 제조
-규모: 상시근로자 68명
-외국인 근로자: 우즈베키스탄 8명 채용 → 1년 내 6명 이직
#초기 상황:
2024년 3월, C 공장은 극심한 인력난으로 우즈베키스탄 근로자 8명을 급하게 채용했다. 공장장은 "일할 사람만 필요하다"며 최소한의 준비만 했다. 기존에 베트남 근로자를 고용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패 요인 1: 준비 부족과 무지
-근로자들이 도착했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기숙사는 좁은 공간에 2층 침대를 빼곡하게 배치했다(1인당 2.0㎡, 법정 기준 미달)
-기도 공간이 전혀 없었다. 근로자들이 요청하자 "회사는 종교 시설이 아니다"라고 거절했다
-취사 시설은 전기밥솥 1개와 작은 전자레인지뿐이었다
-냉장고에는 회사에서 제공한 반찬(돼지고기 포함)이 들어 있었다
-와이파이가 없어 근로자들이 개인적으로 비싼 데이터 요금제를 구매해야 했다
입국 첫 주, 근로자 라심(28세)은 기도할 공간을 찾지 못해 화장실 한쪽 구석에서 기도했다. 한국인 동료가 이를 보고 "화장실에서 뭐 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라심은 모욕감을 느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실패 요인 2: 의사소통 단절
-작업 지시는 한국어로만 이루어졌고, 이해하지 못해도 확인하지 않았다.
-"빨리빨리", "이것 해", "저것 가져와" 같은 짧고 명령적인 지시만 있었다
-설명 없이 시범만 한 번 보여주고 "이제 했으니까 알겠지?"라고 넘어갔다
-실수하면 큰 소리로 질책했다. "아, 진짜! 이것도 못 해?"
-통역자나 멘토가 없었다. 영어로 소통을 시도해도 관리자들이 영어를 못했다
-한국어 교육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입사 2개월 차, 근로자 일홈(25세)은 작업 지시를 잘못 이해해 원단을 잘못 재단했다. 현장 반장이 화를 내며 "한국말도 모르면서 왜 왔어?"라고 소리쳤다. 일홈은 외국인력지원센터 상담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물어보면 짜증을 낸다. 그래서 이제는 묻지도 못하겠다. 실수하면 또 혼나니까 매일 무섭다. 한국이 이렇게 차가운 곳인 줄 몰랐다."
실패 요인 3: 이슬람 문화 무시
C 공장은 이슬람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기도 시간 거부:
근로자들이 기도 시간을 요청하자, 공장장은 "작업 중에 무슨 기도냐. 한국에서는 일하러 온 거다. 쉬는 시간에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쉬는 시간(점심 1시간, 오후 10분 휴게)은 기도 시간과 맞지 않았고, 기도할 공간도 없었다.
근로자들은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이나 복도 구석에서 몰래 기도했다. 어느 날 생산 라인 관리자가 이를 발견하
고 "근무 시간에 뭐 하는 거냐"며 질책했다. 근로자들은 억울했지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할랄 무시:
회식 때 돼지고기 삼겹살을 주문했고,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들이 "저는 돼지고기를 못 먹습니다"라고 하자, 공장장은 "한국에 왔으면 한국 음식 먹어야지. 까탈스럽게"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은 빈속으로 회식 자리를 견뎌야 했다.
기숙사 냉장고에도 돼지고기가 섞여 있어,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음식과 분리 보관하려 했지만 공간이 부족했다. 한 근로자가 실수로 돼지고기가 닿은 조리도구를 사용했다가 큰 죄책감을 느꼈다.
#라마단 무배려:
3월 라마단이 시작되자 근로자들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해야 했다. 체력 소모가 심해 오후에 피로가 누적되었다. 하지만 회사는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4시, 금식 중이던 근로자 아지즈(27세)가 어지러워 주저앉았다. 관리자는 "왜 밥을 안 먹고 와서 이러냐. 일 못 하면 다른 사람 데려온다"고 말했다. 아지즈는 라마단을 설명하려 했지만 한국어가 부족해 포기했다.
#명절 무시:
나브루즈(3월 21일)와 라마단 이드(4월 10일)는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근로자들이 하루만 휴가를 요청했지만, "바쁜데 무슨 휴가냐. 한국에는 그런 명절 없다"며 거절했다. 근로자들은 명절 날에도 일하며 고국 가족을 그리워했다.
#실패 요인 4: 고립과 차별
C 공장은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인과의 단절:
점심시간에도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들은 따로 모여 앉았다. 한국인 근로자들이 먼저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말도 안 통하는데 뭐 하러 같이 앉아"라는 분위기였다.
체육대회에서도 "외국인 팀"으로 따로 구성되었고, 한국인들은 "우리가 이겨야지"라며 외국인들을 경쟁 상대로만 봤다.
-차별적 처우:
일부 한국인 근로자들은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들을 "우즈베키"라고 부르며 하대했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야", "너" 같은 호칭을 사용했다.
작업복 배부에서도 차별이 있었다. 신품은 한국인에게만 주고,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들에게는 낡은 것을 주었다.
-고충 처리 없음:
근로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창구가 없었다. 한국어로 소통이 어려운데, 통역자도 없었다. 외국인력지원센터에 상담을 요청해도, 회사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마라"는 태도였다.
-이직의 시작:
입사 3개월 차인 6월, 견디다 못한 라심과 일홈이 먼저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다. 산업인력공단 상담사가 회사에 개선을 권고했지만, 공장장은 "일 못 하는 애들이 핑계 대는 거다. 보내주겠다"며 무시했다.
두 사람이 떠나자 나머지 근로자들의 사기도 떨어졌다. "우리도 여기서 1년을 버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커졌다.
8월, 라마단 이드에 휴가를 거부당한 것에 분노한 아지즈와 파르홋도 이직을 결정했다. 10월에는 2명이 추가로 떠났다.
#1년 후 결과:
2025년 3월, 입국 1년 시점에서 C 공장에 남은 우즈베키스탄 근로자는 2명뿐이었다. 남은 2명도 재계약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생산성 저하: 잦은 이직으로 숙련 인력이 계속 빠져나가 생산 효율이 오히려 15% 감소했다
-재채용 어려움: C 공장의 나쁜 소문이 우즈베키스탄 근로자 커뮤니티에 퍼져, 신규 채용이 어려워졌다
-추가 비용 발생: 이직한 6명을 대체하기 위한 채용·교육 비용으로 약 2,400만 원이 소요되었다
-작업장 분위기 악화: 한국인 근로자들도 "외국인 근로자는 다 금방 그만둔다"며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공장장은 "요즘 외국인 근로자들은 참을성이 없다. 조금만 힘들어도 금방 도망간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외국인력지원센터 담당자는 "C 공장은 매년 외국인 근로자 이직률이 50%를 넘는다. 문제는 근로자가 아니라 회사의 관리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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